1. 서론: 더 없이 소중한 한 권의 책
아무리
한국의 저널리즘이 왜소하다고 하더라도, 97년 외환위기(a.k.a.
IMF사태)를 조망하는 제대로 된 책 한 권이 없었다는 점은 절망적이었다. 이제민 교수가 <외환위기와 그 이후의 한국경제>를 내기 전까지는.
이로 인해 한국의
장삼이사들이 2008년 미국의 GFC(Great Finance
Crisis)이 왜 발생했냐고 물어보면 Subprime mortgage와 CDS 등을 얘기하는 반면, 본인들 나라에서 일어난 97년 외환위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문제의 원인은 차지하고서라도 IMF가 여느 ‘금융’위기가
아니라 ‘외환’위기였다는 점도 자주 간과 된다.
이는 영화판에서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빅숏>에서 GFC의 원인에 대해 간명하게 설명하는 반면, 한국의 외환위기 20년 후 나온 <국가부도의 날>은 IMF사태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며, 국가기관이나 국제기구 등의 역할에 대해서도 오인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 입에서 “디폴트를 검토하자.”라는 말을 할 때는 정말
ㅠㅠ
그리하여 제도권 경제학자가 우리 같은 장삼이사를 위해 외환위기 전반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양서를 냈다는 점은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은 것과 같다. 이 책이 나온지 4년, 외환위기가 터진지 24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한국의 외환위기에 대한 책은 de facto 유일하다.
[Key
Takeaways]
1. 한국
경제 모델: 위기로 점철된 지속 성장 (고성장 but 경제위기 빈번)
2차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인 한국이 수출지향적 공업화 정책을 택했기
때문이다. 물론 ‘수입대체공업화’를 했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고, ‘수출지향적 공업화’를 한 숙명 중 하나가 외부의 바람에 취약. 국가 경제를 수출에 걸었으니, 옆집에서 기침을 하면 감기를 계속 걸리게 되는 구조다.
(참고) 수출지향적 공업화 vs. 수입대체 공업화
2차세계대전 이후 1940-50년대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신생국들은 자생적 3차산업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허약했고, 원자재와 공산품을 수입하며 무역적자가 끊임없이 누적되었다. 이에
신생국이 경제발전을 하며 선택할 수 있는 모델이 2가지 있었는데,
1. 수입대체공업화 2. 수출지향적공업화가 그것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수입대체공업화’를 선택해 망했고, 한국/싱가포르/대만/홍콩이 유일하게 ‘수출지향적공업화’를
선택하였다.
남미의 모든 나라가 ‘수입대체공업화’
추진한 이유
1. 개도국이 선진국에 수출 경쟁력이 있는 공산품을 생산하기 현실적으로
어려움
2. 한번 수입대체공업화를 채택하면 그 관성과 기득권에서 벗어나기
어려움
3. 식민지배의 경험; 결국
제국주의열강(이후 선진국)에 공산품을 수출하면 정치적으로든
독립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종속 – “경제적 독립”을
위해 선진국과 관계 끊자라는 국민적 정서
물론 한국도 독립 직후에는 에는 ‘수입대체공업화’를 선택하다가 이후에 바꿈. 처음에는 미국은 한국 원자재+ 1차 가공 -> 일본 완성품
-> 미국 수입. 구조를 구상했다가 후에 한국물건도 직접 사주는 것으로 바꿈.
2. 1998년
외환위기의 원인
1997년 당시 한국 상황: 거시경제적으로
의외로 괜찮았다. 이건 IMF도 인정하는 부분. “한국 경제 Fundamental이 튼튼해서 동남아 위기와 다르다.”라는 경제관료의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반면, 한국은 미시경제적 문제가 있었다. 기업의 저이윤 고부채 경영이 만성적 부실채권을 낳고, 그것이 누적되면서
언젠간 터질 폭탄을 더 큰 폭탄으로 돌려막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자.
1. 1990년대 초반 YS의
문민정부가 등장하며, 재벌의 경제적 집중을 억제한다고 출자총액제한을 강화하고 은행대출을 묶었다. ㅋㅋ 그랬더니 재벌들이 제2금융권에서 차입했다. 1990년대 중반이 되자 재벌이 제2금융권에서 차입한 금액이 은행에서
차입한 금액을 넘어섬.
2. 아무튼 재벌은 제2금융권으로부터
상업어음을 발행으로 장기투자 자금을 조달한다. 이 와중에 은행은 제2금융권에
수신경쟁에서 밀리게 되자, 신탁계정을 통해 재벌이 발행한 상업어음을 매입하며 파티에 참가한다.
...................
이게 아주 골때리는 거임. 단기차입금으로 장기투자를 하는 만기불일치(term mismatch)가 누적되며 돌려 막기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짐.
단기차입금으로 장기투자를 하는 것이 말이 되냐고? 개미가 빚내서 주식하는데
장투한다고 하고 있는 거임. 이러다 크게 물렸는데 빚 갚으라고, 더
연장 안 된다고 하면 개미는 한강가야 하는 거임. 그걸 재벌과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 모두가 어깨를 걸고 하고 있었다.
3. 1997년이 되자 Party의 끝이 보이기 시작. 한보를 시작으로 대기업의 연쇄도산이 시작. 정부는 부도유예협약으로
연쇄도산은 좀 막아보려했으나, 이걸 들은 쩐주들이 뱅크런까지 시작. 이렇게
대규모 금융위기의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한보는 역시 정태수 회장님, 그리고 항상 정장에 흰 운동화를 신고 다니셨지... 사실 한보로 제일 유명한건 재건축계의 영원한 떡밥 은마아파트)
4. 자, 그런데 우리가 1998년 위기를 금융위기라고 하지 않고, 외환위기라고 한다. 왜냐하면 한국은 국내금융위기로 시작했지만, 이를 수습하기도 전에 외환위기로 끌려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아직 외환위기까지는 아니고, 국내 금융위기 였다. (마치 2002년 카드채사태가 그랬던 거처럼 금융위기였다. 아직까지는…)
2. 그렇다면 이게 왜 외환위기로 비화되었나?
1. 1997년 대형 보험사의 도산 등 일본의 국내 금융위기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행들이 BIS 자기자본 비율 맞추기 위해 자금 회수. 이때 일본은행들이 무역신용이나 은행간 대출로 빌려주었던 단기자금도 갑자기 회수하기 시작했다.
2. 일본은행들이 자금을 회수하자 한국의 은행들을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은행이 gg를 침.
3. 은행들이 gg치니, 정부가 나서 급하게 1997년 8월
은행의 외채에 대한 지불보증을 해줌. 이게 신의악수였음(근데
또 그럼 은행 부도나게 냅둘 수도 없긴 함) 이제 외국의 빚쟁이들은 시중은행이 아니라 한국정부에게 빚을
갚으라고 찾아 옴. 근데 한국정부는 그걸 갚아줄 돈이 없었음. 정부가 GG. 이러면서 IMF로 가게 된다.
4. 정부는 은행의 외채를 대신 갚아줄 능력이 왜 없었냐?
일반적으로 정부가 외채를 갚아줄 능력이 없는 경우는 3가지임
1. 거시경제의 상태? 일단
한국은 이건 아니었음 GDP 대비 순외채나 경상수지 같은 거시경제지표는 당시 건전 (심지어 IMF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삼)
2. 재정건정성 여부? 우발채무가
있었나? 아님.. 이 것도 아님
3. 외환보유액? 정부의
유동성이 부족한 경우. 바로 한국이 여기에 해당함. 1997년 9월말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단기외채의 40.9%에 불과.
4. 빚쟁이들이 찾아왔는데, 정부가
줄 돈이 없어서 GG à IMF
잠깐.. 이상한 걸 발견 하셨음? 말이 안되잖아. 외환보유액의 40%가 단기외채를 갚는데 써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외환보유액을 털어도 단기외채 커버를 못한다는 얘기임. 그럼
한국의 외환 보유액은 왜 이것밖에 안됐냐?
1996년 OECD 가입하려고
무리하게 저환율정책해서 무역적자 봐서 특히나 낮긴 했는데, 원래
IMF 이전가지는 저렇게 외환보유고를 낮게 유지했었다. Marginal하게만 수십년 운용.
왜냐면 당시의 상식으로는 외환보유고를 낮게 유지하는 것이 최적화(Optimization)이다. 투자할 데가 많고, 수익율도 괜찮으면 현금을 쌓아놓고 있는 것이
바보임. 최대한 땡길 수 있는 곳에 투자해야지. 그런 운용으로
경제를 수십년간 잘 성장해 온 것이고, 투자를 통해 버는 속도가 외채의 속도보다 더 빠르면 경상적자도
큰 문제가 안 된다. 일시적인 것이므로.
전문용어로 이를 동태적 최적화(Dynamic Optimization)이라고
한다. 자금을 빌려 투자함으로써 소비수준을 유지하고, 그
결과 장래에 늘어난 생산으로 과거의 빚을 갚는다. 1996-1997년 당시 경상수지적자는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그 적자를 단기외채로 매꾸고, 단기외채를 그
이상으로 땅겨서 해외투자를 하고 있었다는 것.
3. 결국, IMF
외환위기는 단기 유동성(liquidity)의 문제가 아닌가…
이것이 이 책의 핵심 논점이다. IMF 외환위기 사태는 물론 한국재벌의
누적된 병폐, 정경유착 등으로 단기외채 무서운 줄 모르고 그거 땡겨다가 장기투자하고 앉아있는.. 한국 경제의 내적모순이 응축되어 폭발한 것이었겠지만, 1997년
당시 위기 자체는 Solvency의 문제가 아니라 Liquidity의
문제였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1997년 당시 단기외채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외화유동성을
공급했으면, 국내 금융위기 정도로 막을 수 있었다. 은행, 대기업 몇 개 부도나고 혼란은 있었겠지만.
앞서 말했듯, 한국의 경제구조 상 태생적으로 위기가 빈번하게 찾아온다. 우리의 Mofia 아저씨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고, 그간 여러 위기를 겪으며 나름의 탄탄탄한 Know-how를 갖고
있었음. 무슨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기재부 아저씨들이 정경유착해서
전횡만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해보면 행시재경직 pass하고
그 중에 해외 유학 다녀와서 박사 따고, 실무 열심히 하신 훌륭하신 분들임. (최소한 내가 아는 분들은 훌륭 ㅋㅋ)
당시 기재부, 재경원 mofia 아저씨들은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냐? 이미 1980년대 초 약 15년 전에 비슷한걸 해봤고 그 방식으로 이 위기를 넘으려고 했다. 꺼림직한
과거가 있지만, 알고보면 혈맹. 21세기 동아시아의 가장
믿음직한 한국의 파트너. 우리의 동반자 일본이 있었다. 1980년대초
외환위기를 그렇게 넘겼다. 일본에서 급하게 40억불 차관
받아서 넘김.
단기 외환을 빌려올 나라는 흑자충의 나라 일본밖에 없었다. 그리고
금융위기는 산불과 같은 것이어서 초반에 빨리 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므로, 일본 대장성을 위시한
일본 정부는 기쁘게 돈을 빌려줄 의사가 있었다. Mofia들 급하게 일본 출장가고 난리도 아니었으나…
하지만, 미국은 일본이 나서서 초기에 수습하겠다는 것을 저지하게 해서, 위기를 키워서 국가 경제를 사단을 내서 IMF로 가게 한 뒤, IMF 구제금융에서는 자금 제공조건으로 각종 경제개혁(과 자본시장 open)을 요구한다.
그리고 한국이 실제로 외환위기는 IMF 구제금융(bail-out)이 아니라 채권의 만기연장(bail-in)을 통해서 해결. 그리고 1998년 하반기가 되자 한국의 실물경제와 별개로 외환위기는 사실상 종료되는 데 이 역시, 외환위기의 성격- solvency가 아닌 liquidity의 문제-의 방증이다.
그럼 1980년대 미국은 일본을 때려 한국을 도와주라고 하고, 15년 뒤에는 정반대로 일본이 도와주겠다는데도 막앗을까? 이건 YS의 외교 실패인데 ㅋㅋ 냉전의 존재 여부가 더 큰 요인이었을 것. 그리고
미국 헤게모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이 문 꽁꽁 닫고 미국에게서 단물만 뽑아 먹으려고 하면서 찍힌
당시의 상황 등등 때문이다. 한국의 번영을 위해서는 미국과 무조건 잘 지내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얻으며
너무 길어지니 오늘은 일단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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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1982 외환위기 |
1997 외환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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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
오일쇼크, 중화학공업 중복투자 등으로 단기 외화흐름 최악 한국은 전 최전방으로
미국 레이건-전두환 첫 회담. 일본이 동아시아안보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미국에 이름. 일본에 안보분담금요구하는 등 돈 내놓으라고 땡깡. ㅋㅋㅋㅋ |
앞서 설명 한국은 11월 2차례에 걸처 일본에 유동성
공급 요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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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스즈키 내각이 거절. |
일본 정부는 한국의 유동성(외환보유액)부족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진단: 한국이 외환위기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국익에 부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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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레이건 정부는 나카소네정부를 압박하여 한국에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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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직접 한국에 유동성 공급 하려고 했으나, 미국이 안 된다고 함 그러자 일본이 AMF를 만들어 한국에 유동성 공급하겠다고 해도 미국은 반대
미국 재무부 차관 로렌스 써머스가 일본 재무차관에게 밤12시에 전화해서 2시간동안 AMF 하기만 해보라고 욕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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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
83년1월 일본 40억불 차관으로 외환위기 넘김 |
IMF 뚜둥 |
<국가부도의날>을 굳이 반미 프로파간다로 만들자고 했으면, 당시 주인공을 강만수 형으로 하고, 일본을 우리의 친구로 그렸어야 현실에는 더 맞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그걸 개/가재/붕어들이 잘도 좋아했겠다. ㅋㅋㅋㅋㅋ
혜수누님 자리에 만수형이 있어야 한단 말이오... 만수형 찾아보니 재드래곤 가석방될 때 같이 되셨네
2부에서는, IMF 이후
한국경제의 체질변화, 2008년 금융위기(Global Finance
Crisis), 한국경제성장률, 국뽕 moment 등등을
다뤄보도록 하자.
아무튼 넘나 재밌었어요. 이제민 교수님께 다시 감사. 압도적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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