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님하..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요약)
1997년 한국의 유동성 문제는
1980년대초 위기처럼 일본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미국이 자국의 국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막았고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전면적인 외환위기로 번지게 되었다. 미국은 한국을 IMF로 가게 해서 1) 전면적인 구조개혁 2)자본시장 개방을 요구하였고, 한국 정부 당국 역시 이 기회에 한국
경제의 오랜 구조적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고자 했다. 그 결과 한국은 기업부실채권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였고, 여러 제도적 승격을 이루었다. 급격한 경제 제도 변화는 이후 한국이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기반이 되지만, 과소투자에 따른 1) 만성적인
저성장, 2)노동시장의 불안감 증대 3) 소득분배 악화 및
노동의 이중구조 심화 등 문제를 안는다. 10년후 2008년
미국발 GFC가 터졌을 때, 한국경제체제는 구조개혁과 자본시장개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환시장은 불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2. 모든 경제위기는 1가지
대규모
대차관계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채권자가 채무자의 상환 능력을 의심해서 자금을 회수할 때 일어난다.
3. 무의미한 역사의 가정법.
[Case 1]미국이 동아시아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넘어갔을 경우(1980년대 초처럼 일본의 도움으로 유동성 해결)
국내 금융위기는 불가피. 외환위기 이전 도산한 8대 재벌 외 몇 개로 추가 재벌 도산했을 것이므로 초유의 대규모 재벌 도산 사태는 불가피했곘지만, 한국은 구조조정으로 부실채권문제를 해결하면서 확장적 통화 및 재정정책으로 경제성장률 하락을 최소화 할 수 있었을
것
[Case 2] 한국이 미국과
IMF의 요구를 거절했을 경우
미국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고, 정말 파국이 일어났을 것. 이 경우 모라토리엄이든 디폴트든 하게 되는데 ㅋㅋㅋ 동시기에 배짼 러시아를 보면 이해가 될 것. 국제 신용시장에서 거의 미아가 되고, 외화프리미엄도 엄청났을 것이고, 한국은 러시아와 달리 안보 문제까지 얽혀서 정말 상상하기도 싫네 ㅠㅠ
그런데 미국과 좀더 잘 협상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1998년 후반이 되면 사실상 외환위기가 끝났고, 결국 유동성 문제만 해결했으면 길어야 1~2년 안에 끝낼 수 있는 문제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4. 그렇다고 미국의 헤게모니가 나쁜 것이고,
우리가 반미투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님.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이 미국 헤게모니의 성격이 한국에 불리하게 바뀌는 상황을 뼈아프게 경험했다. 하지만 미국의 헤게모니의 성격이 바뀌는 것보다 미국 헤게모니가 약화되는 것이 더 지옥일 것. 미국 헤게모니가 약화되면 세계가 20세기 전반에 경험했던 글로벌 리더십의 부재를 겪게 된다.
한국은 1960년대 이후 세계 질서에 빨리 편승해서 경제기적을 이루었고, 그
바뀌는 과정에서 대응하지 못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다. 그리고
이후에 잽싸게 적응해 중진국의 함정을 피해서 선진국이 되었다. 미국 헤게모니가 약화되고, 미국이 예전처럼 세계의 경찰국가를 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다시 말해, 한국 국익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은 미국이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한국이 미국과 친하게 지내며 그 헤게모니에 적응 협력 하는 것.
5. 노태우 정부 200만호 건설 평가 : 갓태우
1980년에서 1987년까지 8년동안 정부는 inflation을 잡기 위해 긴축재정 시행하며, 주택투자가 부진(평균 6.5% 증가)
1980년대 중반 3저호황에
따른 유동성 확대 + 주택공급부족 = 주택가격 폭등
1988년-1991년까지
평균 28.5% 증가
1) 서민뿐 아니라 중산층을 위한 전방위적 주택공급으로 수급안정
2) 주택건설정책 시행과정에서 재정적자가 없었음 (중요한 Point)
3) 주택난에서 오는 사회갈등 해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 주택 안정화 달성
모정린 –베리 와인거스트 200만호
건설이 포퓰리즘 성격이 있으며 이것이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 → 설득력 없음.
6. 외환위기 이후 경제성장률 하락 이유 (이전이 과잉? Vs. 이후가 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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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3-1979 |
1980-1997 |
1998-2007 |
2008-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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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률 |
10.6 |
8.5 |
4.9 |
3.0 |
|
1인당GDP증가율 |
8.4 |
7.4 |
4.3 |
2.5 |
1997년 이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8.5% → 4.9%로 갑자기 반토막이났다.
1997년 이전 한국경제가 과잉성장을 했거나, 한국이
1998년 이후 한국이 과소성장을 하게 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제민교수는 IMF 이후가 과소성장라는 견해에 손을 들어 줌.
경제성장요인 = 요소투입증가율(자본,노동 가중평균) + 총요소생산성증가율
1998년 이후 한국경제성장률이 저하 된 것은 요소투입증가율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 총요서생산성 증가율은 이전, 이후가 변화가
거의 없다. 즉 외환위기 후에는 저투자가 저성장을 가져오고 저성장의 결과 기업은 낮은 매출액 증가율을
기대해서 다시 투자를 적게하는 악순환.
7. 한국 재벌의 대마불사는 사실이 아님
한국에서 재벌이 대마불사한다는 대중의 인식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저이윤-고부채가 한도를 넘어가면 도산했고, IMF 이전에도 그랬다. 개별 재벌의 도산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고, 기업자체가 아니라 소유주와 경영진이 퇴출되면서 정리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세계적인 top class 기업이 몇 개 나왔다.
(논문도 있음)
8. 가슴이 웅장해지는 (국뽕) Point
한국은 자신의 상표와 기술력을 근거로 선진국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대기업을 육성했다는 점에서 산업화 역사상
일본 다음으로, 그리고 개도국으로서는 처음으로 성공했던 것이다.
민주정치와 경제성장간에는 2차 함수 관계. 즉 권위주의 정치는 성장률이 매우 높은 개도국과 성장률이 가장 낮은 개도국에서 나타나고, 민주정치는 그 중간에서 나타난다. (Seim and Parente
2013). 하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민주화를 하면서 경제성장률이 올라간 나라
(Prichett and Summers;그 로랜스 써머스ㅋㅋㅋ)
9. 이제민 교수의 view에 대해 여전히 남는 의문…
반론까지는 아니고, 내가 완전히 그의 view를 수용하지 못하는 point가 있는데
과연 한국이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최선진국이 되었을 수 있을까?
외환위기 이전의 경제성장률이 이어졌으면, 수치상 2010년 정도엔 한국은 최선진국이 된다. 하지만 외환위기 한국경제
모델, 즉 대기업들의 ‘고위험 저수익’모델로 이것이 달성 가능했겠는가 하는 점이다. 저자의 말처럼 1997년 한국 경제는 일시적인 유동성위기에 불과했고, 이것이 외환위기까지
과연 자생적 역량이 있었는가? 관성이 이게 가능했겠는가? 즉 1980년대말 군사정권도 3저호황이
끝나기 전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는데, 90년 중-말 민주주의
정부가 이를 자생적으로 브레이크를 걸 수 있었겠느냐 하는 점.
대우그룹처럼 정부의 비호 아래 leverage를 높이 일으켜, 외환 spread를 먹는 business가
영원히 지속 될 수는 없는 일이다. IMF 처럼 극단적인 처방이 아니더라도, 한국 경제는 언젠가는 sustainable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까? 결국 저자의 주장처럼 일본의 도움을 받아 1997년을 넘겼다고 하더라도, 한국은 자체 문제를 개혁할 동인이 있었을까. 물론 IMF와 미국의 주문이 2008년 금융위기시, 효과가 거의 없는 처방이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그 정도 level의 개혁이라도 자생적으로 할 수 있었을까?
10.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지속적인 경상수지흑자국
But,
순대외자산이 그만큼 쌓이지 않음. 국제투자에서 순차익(net
capital gain)이 마이너시이기 때문. 외국인이 보유한 한국 자산의 가격은 오른
반면 한국인이 해외에 투자한 자산은 오르지 않았다.
순차손의 규모는 IMF 이전 GDP의 0.2%에서 GDP의 2.3%로
증가
2016년까지 약 280조원 (inflation 반영시 360조원 수준)
사실상 국부유출
11.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Global Financial Crisis)
글로벌
불균형으로 동아시아에서 유입된 자금이 미국 국내 금리를 끊임없이 낮게 유지해 줬다. (이건 미국의 책임이
큼. 1998년 한국에 잡도리 해갖고, 많은 흑자국들이 한국을
반면교사 삼아서 외환보유액을 끊임없이 쌓아 놓는 동인이 됨. 즉 “자기보험”의 목적 )
1930년대 세계대공황처럼 되지 않은 이유: Fed이 위기에 대응하는 능력이 엄청났음.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수단으로 불을 끔. 경제학의 본가 미국이 쌓은 ‘내공력’에 감탄 또 감탄. 그리고 중국이 비오는데 우산을 안 걷어 들임. 세계의 공장을 계속 돌리며 세계에서 유일한 소비.
12. 2008년
한국의 외환위기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못하지만 한국에는 10년만에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외환위기의 정의(Frankel-Rose)
신흥국 통화가치가 25%이상 하락하고, 통화가치의
절하율이 전년 절하율을 10%point 상회
이 정의에 따르면 2008년 한국은 외환위기였고, 외국인이 한번에 국내 주식을 팔고 나감. 근데 이때 외환위기의 원인은
외국인의 탈조선이 아니라 ㅋㅋㅋ 은행이 단기외채를 못 갚아서 발생했다. 또??????? IMF 때 그 비싼 수업료를 내고 10년동안 처배운 것이
없음 ㅋㅋㅋ
IMF 이후 은행들이 뭘 했나 살펴보자.
1997년 외환위기 직구 정부주도로 대규모 인수합병하며 은행간 외형
경쟁을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예대율이 올라갔다. 2004년 100%를 넘어서서 2007년말에는
135.5% (예금 받은 돈보다 더 빌려줬다는 말. How? CD를 발행하거나 은행 채권
발행) 이 과정에서 은행들이 대규모 단기외채를 지게 되었다. (외화선물환
매입, 외화 대출) … 또
2008년에 유동성 위기 터지니깐 외환위기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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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이전 |
IMF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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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은행들 영업형태 |
은행들은 재벌기업(이윤보다 성장 초점)을
지원하다가 부실채권을 떠안으면서 망함 |
은행간 외형성장 경쟁 (IMF이후로 재벌기업이 하던 짓 고대로 함) |
결국, 정부가 나서서 2008 금융위기를
해결.
정부는 당시 “ 한국의 외채는 외화선물환 매수 등 미래 수익에 기반을
둔 일시 차입으로서 외화 자산과 상쇄 되기 때문에 상환 부담이 없다.’라고 했는 개뻥었음. 당장 외환위기가 터졌는데 원인도 모름 ㅠㅠ
2008년 IMF는 조건
없이 통화스왑을 한국에 제안함. 한국은 IMF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가 일었으므로, 아마 MB가 IMF 받을 수가 없었음. 민란 일어남. ㅋㅋㅋㅋ “그때 IMF랑
지금 IMF랑 달라요.”라 고 얘기했어도 이 말을 누가 믿겠음? 사실이긴 하지만 ㅋㅋㅋ
그래서 미국과 직접 swap 하면서 해결. 이때 미국은 GFC 원죄가 있어서 그런지 별 조건을 붙이지도 않았고, 한국은 덕분에 이때 잘 넘어감. 사실 동유럽 등 은 2008년 위기로 아주 나라가 골로 간 경우도 많음. 우리는 너무 무사히
넘겨서 감도 없지만.. 사실 2010년 이후는 90년대중반 이후 최대 호황까지 맞았으니 뭐..
13. 2008년 GFC(Global Finance Crisis)에서 한국경제 대선방 원인
2009년 선진국들이 대폭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가운데, 한국만 유일하게 +0.7% 성장
이유1. 즉각 확장 거시 정책(GDP의 4%) ; 갓MB?
- 한국은 재정정책을 펼 여유가 있었음. 이건 노무현정부가 건전한 재정으로 넘겨줌 + MB의 4대강 집착(이게 생산적인지는 모르겠지만) = 유효수요유지에 큰 도움. 10여년 후 박근혜
정부가 재정건전화하면서 넘겨주고, 문재인정부가 파티하고 있음. 역사는
반복 공수가 바뀐 반복 ㅋㅋ
(여러분 제가 그립습니까? feat. 뭘 해도 어색한 형 ㅋㅋㅋ *source : YONHAP NEWS)
이유2. 2008년 외환위기에 따른 불황형흑자 발생
2009년
실질실효환율은 2007년에 비해 38.9% 상승 ㅋㅋㅋ 무슨
위기만 나오면 형들이 Kospi 던지고 나가서 환율이 박살이 나서, 원화평가절하에
따른 수출 경쟁력 상승에 따른, 경기회복 (98년 외환위기에도
그럼)이 가능함. 이건 역설적이긴 하지만 KRW가 Hard Currency가 아니어서 누릴 수 있는 이점이다. 이웃나라 Hard Currency를 보유한 JPY를 보면 ㅋㅋㅋ 이건 뭘 대장성이 뭘 하려고 하면ㅋㅋㅋ 양놈들이 Yen
Carry trade를 하기 때문에 폭망.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엔화평가절상 ㅋㅋㅋ 죽고 싶을거임 아주
암튼 이때 수출주 현대차의 주가가 5배뛰었고, 그걸 바탕으로 오늘날의 현차가 되었다는 레전설이 아직도 내려오고 있다.
이유3. 중국경제와의 관계
2008년 GFC 발생 당시, 위기의 근원지 미국의 소비여력은 박살이 났고, 반대로 중국이 확장정책을 지속하며 세계의 소비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때
한국은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중국에 수출 쭉쭉하면서 성장. 이때 중간재 많이 팔았는데, 차화정 중 바로 화정이 여기서 꿀을 쭉쭉 빨았다고 볼 수 있다. (금호석화
주가만 봐도 ㅋㅋ)
14. GFC 이후
한국은 총수요 부족 디플레이션의 위기에 봉착
GFC 이후 중국의 성장감속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세계는 총수요 부족현상이
타나났다. 이건 한국 경제가 맞딱드린 수 많은 위기 중 처음으로 질적으로 다른 녀석이었다. 왜냐면 1960년대 이후 2013년까지
한국 경제의 침체 원인은 ‘총공급’ 능력의 문제로 발생하였지, 총수요는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 즉, 어떻게 만들어 어디에 팔까?만 고민하면 됐지, 안 팔리면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을 해본적이 없다. 2012년 6월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국은행 목표치 하한인 2.5%에 미치지 못하였다. 심지어
2013년 가계저축률마저 증가하며 디플레이션의 시대를 Open.
디플레이션 발생은 경제의 종말임: 기업과 가계는 소비와 투자를 안하고, 다시 물가 하락, 부채에 대한 부담이 증가 악순환. 심지어 채권자도 소비와 투자를 하지 않음. 채무자의 도산 가능성이
올라가기 때문에 지출을 줄임… 이러다 소멸하고 망함 (a.k.a. 일본병)
2012년부터 디플레이션의 늪이 보이자.. (사실 주택 명목 가격이 하락하는 것 자체가 디플레이션의 징후임) 2013년부터
한국정부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2014년에는 최경환의 ‘초이노믹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일자리 확층 등으로 디플레이션을 막기위해 안간힘 쓰는 중.
1990년대 일본이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디플레이션을 탈출하지 못한
중요한 이유는 저출산이었다. 즉 지금 재정정책을 과다하게 쓰면, 후에
갚을 사람이 없다는 것. 한국은 근데 저출산이 일본보다 더 심각하기 때문에 참 큰 문제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뭐.. 시원하게…)
끝.
1. 이제민 교수님은 경제학과에서
<경제학설사> 등을 가르치셨는데, 물론
나는 안 들었지 ㅋㅋㅋ 강의는 재미없었을 듯; https://www.youtube.com/watch?v=XROfBRnkh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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