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월말 3월초에 감기에 걸렸다. 짜증은 났지만 지나가겠거니 하고 냅뒀다. 사실 Covid-19이 한국에서 퍼지는 초기였기 때문에, 같은 호흡기 질환이어서 내과/이비인후과에 가기도 겁이 나기도 했다. 열은 없었지만,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났다. 따뜻한 물 먹고 잘 쉬었다.
2. 2주정도가 지났는데 낫지를 않았다. 덜컥 겁이 났다. 병원에서 이런 저런 검사를 했는데, 병명은 부비동염으로 결론이 났다. 회사 앞 이비인후과에서 주구장창 항생제 2주 먹었는데 차도는 전혀 없었다.
3. 그렇게 1달을 보내고 4월이 되었다. 병원을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가 막혀서 2시간 이상 자지 못했고, 밤에 코로 숨을 쉴 수 없어서 입으로 숨을 쉬니 입안이 건조해서 잔기침을 했다. 일어나 물한잔 마시고 다시 잠을 청했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가래를 한 10번 뱉었다. 이 상황에서 2주동안 같은 항생제만 먹어봤자, 유산균만 죽는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4. 동네에 나름 유명한 병원을 찾아 갔다. 의사는 2,3번 항생제를 바꿨으나 효과는 없었다. 코세척도 열심히 해줬는데, 코청소를 해도 코 안이 너무 부어 있었기 때문에 2구멍으로 숨쉬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청소를 매일 2~3번 해줬는데 할때마다, 코에서 믿을 수 없는 양의 초록색, 노란색 고름이 쏟아졌다.
5. 부비동염이 걸리고 2~3달정도가 되자 약간 우울증이 걸렸는데. 정말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겁이 났다. 물론 팔이 부러졌을 때, influenza-A에 걸렸을 때 이거보다 훨씬 아팠지만, 이렇게 오래 아프지 않았다. 언제 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암에 걸렸던 친구가 “암투병보다 우울증이 더 힘들었다.”라고 얘기한 것이 이해가 됐다. 화장실에서 코세척을 하다가 서러워서 2-3번 울었다.
6. 코로나 상황은 심각해져갔고, 교회를 가지는 못했지만 on-line으로 예배를 드리며, 부비동염만 낫게 해주시면, 그래서 자유롭게 숨쉬고 예전처럼 밤에 안 깨고 full 잠을 자게 해주시면 10일조도 내고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도우며 살겠다고 수없이 기도했다. 그러나 병세는 호전은 커녕 악화가 되었다.
7. 동네 병원에서는 “약이 이제 없다. 잘 안 낫기도 한다. 수술을 고려해보자.”라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대수술이었다. 그리고 그 때쯤 후각을 완전히 상실했는데, 의사는 “후각이 영원히 안 돌아올 가능성도 꽤 있다.”라고 했다. ‘아니 그러면 후각을 잃기 전에 수술을 빨리 하자고 하던가.’
8. 5월초가 되었다. 아무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짠,신,쓴,매운맛 만 느껴지고 음식에서 아무런 풍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우리의 신체는 연약하다. ‘그래도 시각, 청각을 잃는 거보다 후각을 잃는 것이 낫지 않냐?’ 라고 여러 번 되뇌였지만, 전혀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9.나는 평소 한의학에 건강보험을 보조하는 것을 반대하던 소신이었지만, 급한대로 21세기들어 처음으로 한약도 먹어봤다. 물론 효과는 크지 않았다. 길거리나 화장실에서 ‘비염, 축농증’ 환자를 겨냥한 찌라시 같은 명함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유사의학이 판치는 이유는 물론 이 병이 잘 안 낫는다는 방증이리라. 그렇다. 나는 점점 더 우울해졌다.
10. 만나는 사람마다 이 얘기를 하고 다녔는데, 동기 중 1명은 자기도 고등학교 때 축농증이 너무 심해서 수술을 2번하고 겨우 나아졌는데, 그 부작용으로 코가 너무 건조해졌다라고 하고, 다른 동기는 3년전 홍콩에서 정말 심하게 부비동염이 걸렸는데,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완치를 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러면서 병원은 낡았지만 실력이 있다면서 나에게 한번 가 볼 것을 권했다.
1부 끝.
(facebook 글 보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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