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일 일요일

아파트 소유는 민주주의 그 자체다

 1. 권력은 재산을 따라간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주인'이라는 말을 헌법 조문이 아니라 현실에서 찾으면, 주인이란 결국 소유한 자를 뜻한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려면 국민이 나라를 그 땅과 집을 실제로 나누어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국민이 고르게 소유하고 있을 때에만 민주주의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 되고, 국가는 국민을 업신여기지 못한다.

 

이것은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1656년 영국의 제임스 해링턴은 『오세아나』에서 "권력은 재산을 따라간다(power follows property)"고 썼다. 토지가 한 사람에게 몰리면 군주정이 되고, 소수에게 몰리면 귀족정이 되며, 다수에게 분산되면 공화정이 된다는 것이다. 이 명제는 미국 건국자들에게 그대로 계승됐다. 존 애덤스는 "재산의 균형이 권력의 균형을 결정한다"고 했고, 토머스 제퍼슨은 자기 땅을 가진 자영농만이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독립적 시민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사상은 1862년 홈스테드법 으로 실현되어 미국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반이 되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리스토텔레스도 나온다. 그는 극빈층도 극부유층도 아닌, 중간 규모의 재산을 가진 중산층이 두터운 폴리스가 가장 안정적인 정체라고 했다. 재산을 가진 자는 잃을 것이 있기에 신중하고, 스스로 먹고 살기에 아첨하지 않으며, 남의 것을 탐할 만큼 궁핍하지도 않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시민의 덕성이라는 것은 도덕 교육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소유에서 나온다.

 

'재산소유 민주주의(property-owning democracy)'라는 용어의 족보도 흥미롭다. 1923년 영국 보수당의 노엘 스켈턴이 만든 이 말은 이후 보수당의 슬로건이 되었는데, 정작 20세기 최고의 좌파 정치철학자 존 롤스도 후기 저작에서 정의로운 사회의 모델로 복지국가가 아니라 재산소유 민주주의를 꼽았다. 사후 재분배로 빈자를 '지원'하는 사회보다, 애초에 자산이 널리 분산되어 모두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출발하는 사회가 더 정의롭다는 것이다. 소유의 분산이 민주주의의 토대라는 명제는, 좌우가 드물게 합의한 몇 안 되는 공리다.

 

2. 민주주의의 역사는 땅 소유의 역사다

의회 민주주의의 발상지 영국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명목상 영국의 모든 땅은 왕의 것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귀족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왕은 귀족에게 토지를 주고, 귀족은 왕에게 세금과 군사력을 제공하는 관계였다. 존 왕이 1215년 마그나 카르타에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관대해서가 아니라, 땅이 이미 귀족들의 손에 있었기 때문이다.

 

16세기 헨리 8세가 가톨릭 수도원을 해체하자 잉글랜드 토지의 상당 부분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고, 이를 사들인 신흥 지주층 젠트리가 부를 축적했다. 땅을 가진 이들은 하원을 채웠고, 하원은 왕과 맞설 힘을 갖게 되었다. 17세기 찰스 1세가 의회 동의 없이 세금을 거두려 하자 하원의 젠트리들은 내전 끝에 왕을 처형하고 공화정을 세웠다. 왕의 목을 벨 수 있었던 것은 사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아니라 소유였다.

 

반대 방향의 증명은 로마가 해준다. 공화정 로마의 군단병은 자기 땅을 경작하는 자영농이었다.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시민이 곧 군대였고, 그것이 공화정의 힘이었다. 그러나 정복 전쟁이 가져온 부로 원로원 귀족들의 대농장 라티푼디움이 자영농의 땅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땅을 잃은 시민들은 로마 시내로 흘러들어 빵과 서커스에 의존하는 무산대중이 되었다. 그라쿠스 형제가 토지 재분배로 자영농을 되살리려 하자 원로원은 그들을 때려죽였다. 땅 잃은 시민들은 이제 국가가 아니라 자신에게 땅을 약속하는 장군 개인에게 충성했고, 시민의 군대는 유력자의 사병이 되었으며, 공화정은 카이사르와 제정으로 무너졌다. 소유의 집중은 곧 공화정의 죽음이었다.

 

20세기의 사례는 더 압축적이다. 1923년 바이마르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중산층의 평생 저축과 자산을 몇 달 만에 증발시켰다. 성실하게 일해 무언가를 소유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을 때, 그 뿌리 뽑힌 중산층이 10년 뒤 어느 정당의 지지 기반이 되었는지 우리는 안다. 소유를 잃은 시민은 민주주의의 시민이 아니라 나치의 노예다.

 

반면 2차대전 후 미국은 정확히 반대의 길을 갔다. 제대군인원호법(GI Bill)은 수백만 참전 군인에게 계약금 없는 저리 모기지를 제공했고, 미국의 자가보유율은 1940 44%에서 1960 62%로 뛰었다. 교외의 작은 집을 소유한 이 거대한 중산층이 전후 미국 민주주의 황금기의 물적 토대였다.

 

3. 대처 Right to Buy

마거릿 대처가 그토록 인기 없는 구조개혁을 밀어붙이면서도 11년을 집권할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다. 1980년 대처 정부는 주택법을 제정해 'Right to Buy', 즉 공공임대주택 거주자가 자신이 살던 집을 시세보다 대폭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정부가 소유한 카운슬하우스를 노동계층에게 모기지와 함께 넘겼고, 대처 집권기에만 100만 가구가 넘는 집이 민간 소유로 이전됐다.

 

평생 국가의 세입자였던 노동자들이 등기부등본에 자기 이름을 올렸다. 국가의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은 국가의 '피부양자'이지만,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은 이 나라의 '주주'. 임차인은 시혜를 요구하지만 소유자는 책임을 진다. 대처는 복지 지출로 노동계층의 표를 산 것이 아니라, 소유권으로 노동계층을 중산층으로 바꿔버렸다.

 

4. 한국 민주주의는 두 번의 소유 혁명 위에 서 있다

한국의 사례는 이 논지의 가장 극적인 방증이다.

 

첫 번째 혁명은 1950년 농지개혁이다. 유상몰수·유상분배 방식으로 지주의 땅이 소작농에게 넘어갔고, 해방 당시 절반이 넘던 소작농이 자영농이 되었다. 한국의 토지 분배는 단숨에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수준이 되었다. 비교정치학의 고전적 연구들은 한국·일본·대만이 농지개혁에 성공해 평등한 사회구조, 폭발적인 교육 투자, 그리고 이후 민주화의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낸 반면, 농지개혁에 실패한 필리핀은 지주 과두정이 그대로 살아남아 오늘까지도 민주주의가 형해화된 채라고 지적한다. 1950년의 한국과 필리핀 중 어느 쪽이 민주주의에 성공할지 물었다면 누구나 필리핀을 골랐을 것이다. 차이는 단 하나, 땅을 나눴는가였다.

 

두 번째 혁명이 아파트다. 산업화와 함께 국민의 욕망은 논밭에서 서울의 아파트로 옮겨갔다. 6공 초기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호 건설은 이 욕망에 응답했다. 여기서 결정적이었던 것은 물량이 아니라 소유 형태다. 이 아파트들을 공공임대나 장기전세로 묶어두지 않고 분양을 통해 소유권을 온전히 개인에게 넘겼다는 것. 분당·일산의 등기부등본이 대한민국 중산층의 신분증이 되었다. 이것은 집값 안정이라는 경제 정책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처의 Right to Buy에 맞먹는 시민 창출 프로젝트였다. 1950년의 농지가 산업화의 주역을 길러냈다면, 1990년대의 아파트는 이후 20년간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 중산층 민주시민이라 부르든 뭐라 부르든, 진짜 나라의 주인들 을 길러냈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곧 소유의 역사다. 논에서 아파트로.

 

5. 부동산 소유는 투기가 아니라 시민권의 욕망이다

 

한국 사회에는 내 집 마련의 욕망을 투기 심리로, 부동산을 '불로소득의 온상'으로 보는 통념이 뿌리 깊다. 그러나 실증 연구들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은 정반대다. 자가 소유자는 세입자보다 투표율이 높고, 지역 현안에 더 참여하며, 학교와 공공재에 더 투자하고, 이웃과 더 오래 관계를 맺는다. 잃을 것이 있는 사람, 이 동네와 이 나라의 미래에 지분이 걸린 사람이 시민으로 행동한다. 내 집을 갖겠다는 욕망은 투기 심리가 아니라 이 나라의 진짜 주주가 되겠다는 욕망, 즉 시민권에 대한 욕망이다.

 

또 하나의 통념은 공공임대 확대가 곧 서민을 위한 진보적 주택정책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임대는 아무리 관대해도 국민을 국가의 세입자로 남겨둔다. 세입자의 정치는 임대인에게 잘 보이는 정치, 시혜를 구걸하는 정치다. 소유자의 정치만이 권력과 대등하게 계약하는 정치다.

 

6. 지금 민주주의가 삐걱거리는 이유

지금 한국 민주주의가 삐걱거리는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다. 청년 세대에게 서울의 아파트는 더 이상 성실한 노동으로 도달 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소유의 사다리가 끊긴 것이다. 소유할 수 없는 세대는 이 나라에 지분이 없고, 지분 없는 자는 주주가 아니라 관객이다. 관객은 시스템을 지키지 않는다. 그들에게 남는 선택지는 정치적 냉소와 이탈이거나, 판 자체를 엎겠다는 극단주의다. 바이마르의 뿌리 뽑힌 중산층이 갔던 그 길이다. 로마의 무산대중이 공화정 대신 카이사르를 택했던 그 길이다.

 

20~30대는 왜 극우화되는가. 민주당은 왜 청년에게 인기가 없는가. 온갖 문화적 해석이 난무하지만, 답은 단순하다. 국가가 이 세대의 주택 소유를 원천적으로 막았기 때문이다. 그 봉쇄는 삼중으로 이루어졌다.

첫째, 취업 자체가 어렵고, 집을 살 만한 대출을 일으킬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은 극소수에게만 허락된다. 소유의 출발선인 신용부터 막혀 있다.

둘째, 문재인 정부는 스물몇 번의 대책을 쏟아내며 시장과 싸우다 서울 아파트값을 감당 불가능한 수준으로 폭등시켰다.

셋째, 이재명 정부는 대출을 틀어막았다. 집값이 올라 자력으로는 살 수 없게 된 세대에게, 남은 유일한 통로였던 레버리지마저 끊어버린 것이다. 소득으로도, 시장 가격으로도, 금융으로도 나라의 주인이 되는 세 갈래 길이 전부 국가의 손에 닫혔다.

 

원론적 의미에서 나라의 주인이 되는 길이 막힌 세대에게 남는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국가에 구걸하거나, 국가에 반기를 들거나. 청년 극우화는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지분 없는 자의 합리적 반응이다. 로마의 무산대중이 그랬고 바이마르의 몰락한 중산층이 그랬듯, 잃을 것이 없는 자는 판을 엎자는 쪽에 건다. 나라의 구성원이 되어야 민주주의를 하는 것이다. 구성원이 될 길을 막아놓고 민주시민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주식도 없이 주주총회에 참석하라는 말이다.

 

부동산 정책 논쟁은 흔히 집값논쟁으로 치러진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훨씬 중요한 논점이 있다. 소유가 곧 체제의 문제라는 것이다. 다음 세대가 이 나라의 지분을 소유할 수 있는가는 주거 복지의 문제가 보다 더 심오한 질문. 즉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에 주인이 계속 공급되느냐의 문제다. 1950년에 우리는 땅을 나눠 산업화의 주역을 만들었고, 1990년에 아파트를 나눠 민주화의 주역을 만들었다. 국민이 소유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국민은 주인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아파트를 소유하게 하는 하는 것. 위태로운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가장 시급히 고민해야 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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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소유는 민주주의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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