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이 결국은 행운이 될지는 알 수 없다. … 불행이 닥쳤을 때 사실은 그 불행이 훨씬 나쁜 일로부터 자신을 지켰을 수도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큰 실수를 저질렀을 때도 결국에는 최고의 결정보다 훨씬 도움이 될 수 있다.
— 윈스턴 처칠, 《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
"You never
can tell whether bad luck may not after all turn out to be good luck. ... One
must never forget when misfortunes come that it is quite possible they are
saving one from something much worse; or that when you make a great mistake, it
may very easily serve you better than the best-advised decision." — Winston
S. Churchill, My Early Life
나는 미신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더 폭넓은 의미에서 믿음의 힘을 이해하게 되었다. 실제로 '핫
핸드'에는 뭔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흐름을 탔다는
생각은 결국 오류가 아닐지도 모른다. 적어도 항상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근래에 나온 분석 결과를 살펴보자. 맞다. 승운을 탄 것처럼 보이는 농구 선수가 항상 골을 더 많이 넣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로는 골을 더 많이 넣는다. 자신감은 특히 짧은 시간에 실행력으로 전이된다.
인간은 로봇이 아니다. 기분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카드나 주사위가 흐름을 타는 것은 실제로 가능하지 않다. 도박꾼의 오류는 영원히 오류로 남는다. 그러나 실제 인간의 노력이
요구되는 흐름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마음가짐이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창작 분야처럼 해당 분야가 개인적
행동과 많이 연계될수록 더욱 그렇다. 2018년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한 연구 결과는 과학 분야뿐 아니라 미술과 영화 분야에서도 강렬한 흐름의 명확한 증거를
발견했다.
뛰어난 플레이어들은 그렇게 플레이하지 않는다. 그런 사고방식은 기운을 뺀다. 자신을 과도하게 피해자로 만든다. 피해자는 이기지 못한다. 테이블 운이 나쁘다고? 플레이를 더 잘하게 만드는 까다로운 테이블일 뿐이다. 테이블은 바꿀
수 없다. 그러니 모든 내면의 힘을 끌어모아서 최고의 게임을 해야 한다. 그것을 공부할 기회로 보라. 계속 나쁜 카드를 받는다고? 그 사실은 누구도 모른다.
"포커는 현대적
의미에서 게임 디자이너가 설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비디오 게임이 설계되는 양상에 대한 현대적 관점에
따르면 사실은 나쁘게 설계된 게임입니다. 하지만 전 포커가 더 잘 설계된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류에 영합하지 않으니까요."
소극적 플레이는 안전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느낌이다. 소극적으로 플레이하면 곤란한 상황에
빠질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소극적인 결정을 내릴 때마다 느리지만 꾸준히 칩을 잃게
된다. 또한 포커 테이블에서 소극적인 플레이를 선택하면 더 큰 문제를 안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바람에 잃은 칩이 얼마였던가. 상대가
강하게 나오면 그러지 말야 하는데도 그냥 물러선 적이 몇 번이었던가. 상황을 적극적으로 통제해 반전시키지
못하고 소극적인 태도로 가만히 있다가 당했던 적이 몇 번이었던가.
"지금 관심이
가는 모든 걸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사실 많이 플레이해보기 전에는 모두 쓸데없는 짓이야."
확률 게임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려는 모든
것이 비윤리적이다. 운에 좌우되지 않는 일이 단 하나도 없거니와 이익을 얻기 위해 손실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일 역시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 토머스 제퍼슨, 《복권에 대한 생각 Thoughts on Lotteries》
"If we
consider games of chance immoral, then every pursuit of human industry is
immoral; for there is not a single one that is not subject to chance, not one
wherein you do not risk a loss for the chance of some gain." — Thomas
Jefferson, Thoughts on Lotteries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베팅을 심각한 사회적 병폐에 대한 해독제로
제안했다. 그 병폐는 바로 세계의 확률적 속성에 대한 무지에 기인한 자신감이다. 사람들은 회색을 보는 것이 맞는 곳에서 흰색과 검은색을 보려 한다. 확실성에
대한 잘못된 믿음으로 우리의 정신은 99퍼센트, 심지어 90퍼센트에 해당하는 사실도 100퍼센트로 받아들인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칸트는 그 예로 의사의 진단을 들었다. 의사는 지식을 최대한 동원해 환자의 질병을 판단한다. 하지만 그
결론이 반드시 정확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가 가진 정보와 특정 분야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내린 최선의
결론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에게 확실한 것은 아니라고 말할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는 확실성이 특정 수준(당연히 의사마다 다름)에 이르면 그냥 자신의 진단을 사실로 제시할
것이다.
확률적 사고는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질 줄 알아야
크게 이겨. 모두가 이길 때는 플레이를 잘하지. 하지만 지고
있을 때 흔들리지 않고 잘 플레이할 수 있을까? 이때는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플레이할 게 아니라 주어진
핸드에서 이길 확률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야 해. 그럴 수 있다면 게임을 정복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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