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는 20세기에 소득세가 도입되기 전까지 미국 정부 수입의 90%를 차지했음.
영국 제조업에 대한 경계, 빈번한 경기
침체, 정부의 세수확충이라는 3가지 요인으로 북부에서 보호무역론자들이
득세하며 20세기까지 같은 보호무역이 대세. 반면 남부는
자유무역 지지.
19세기 교통혁명으로 운송비가 하락하여
관세효과를 상쇄하는 상황이 발생함. 증기선, 미국내 운하, 수에즈 운하, 철도 등등. 19세기
후반에는 관세도 낮아지고 운송비도 하락하며 인류는 세계화의 축복을 누리게 됨.
20세기 초
헤크셰르, 올린의 통찰력. 운송비 하락이 전세계 상품 가격의
수렴으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생산요소인 임금, 지대, 이자율에서도
수렴이 나타남.
스톨퍼-새뮤얼슨 정리: 글로벌 무역으로 누가 winner-loser가 되는가?
“보호 무역
정책이 상대적으로 희소한 요소를 보유한 국가에는 이익이지만, 풍부한 요소를 보유한 국가에게는 손해다. 자유무역은 그 반대”
e.g. 자유무역은
토지가 풍부한 나라의 농민들에게 유리하며, 토지가 부족한 농민들은 불리하다. 또한 자유무역은 자본이 풍부한 부국의 자본가들에게 유리하며, 빈곤한
나라의 자본가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함.
1870년 이전의
영국은 다른나라와 비교해 자본과 노동력이 풍부하고 토지가 부족. 반면 미국은 자본과 노동력이 부족한
반면 토지가 풍부. 영국과 미국이 자유무역을 할 경우 영국의 자본가와 미국의 지주가 이득을 봄.
19세기 프랑스
vs. 영국 vs. 덴마크 case
19세기말
신세계(미국)으로부터 유럽으로 값싼 밀이 쏟아져 들어옴.
프랑스: 1870-1871년 보불전쟁 이후 나폴레옹 3세의 제2제국이 종언하며 자유무역 종언. 프랑스 농민들은 보호무역을 원함. 1892년 멜린 관세가 통과되며 관세가 2배 인상되어 2차세계대전까지 계속됨. 관세인상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농업은 쇠퇴.
영국: 노동력과 자본이 풍부해 자유무역에 유리하다고 판단. 보호무역주의를
요구하려는 지주와 내부 갈등있었지만 자유무역 체택. 1890년 이후 영국의 철강, 설탕, 귀금속 등 일부산업은 지주와 함께 몰락.
덴마크: 최상급 육류는 어린 가축에게서 생산. 일찍 도축하려면 좋은 사료를
어렸을 대 먹여야 함. 북유럽국가들이 낙농업 다 잘했는데 덴마크만 시장을 개발하여 장점을 누림. 낙농업자들은 값비싼 탈지 기계를 구입하여 공동으로 크림과 버터를 판매하는 협동조합 설립. 돼지고기 베이컨은 더 큰 스케일의 협동조합. 정부는 국립 및 양돈조직
품질 관리하고 Lur 브랜드 인증.
전세계적 경쟁에 노출된 상황에서
정부의 적절한 대응은 보호가 아니라 자원과 자금 공급임.
남북전쟁이 후 미국의 관세 정책은
공화당 정권에서 보호주의를 채택하고 민주당 이를 완화하는 단조로운 흐름을 이어감.
1930년 스무트
홀리 법안으로 전세계적 보호무역 움직임.
1933년 전세계적
자급자족 경제. 미국은 국제 상거래를 붕괴직전으로 몰아감. 그런데
미국이 결자해지함. Cordell Hull은 미국의 최장수(12년) 국무장관. 무역의 평화적 이득을 이해함. 무역으로 세계평화와 미국의 패권을 달성할 수 있음. 루스벨트 대통령
설득. 1930-1933년 무역난 속에서 피아트, 캘리포니아
와인, 미국의 시계 제조, 독일의 라디오 제조 업자 등을
두고는 모두가 손해 봄.
“외국이
미국에 물건을 판매하여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 제품을 구매해주기를 기대할 수 는 없다.”
1930-33년 전세계적
반세계화로 얼마나 손해를 입었나? 미미함!
당연히 경제성장은 무역을 발생시키는
강한 동력임. 그런데 반대로 보호주의가 세계를 빈곤하게 만든다는 주장은 입증하기 어려움. 1929-1932년 전세계 GDP는 17%하락. 미국에서는 26%하락했지만
관세전쟁이 기여한 정도는 미미하다는 것이 경제학계 중론임.
대략의 논리: 모든 국제무역이 사라지고 수출된 제품의 국재 사용이 없다고 가정하면, 세계 GDP는 동일하게 9% 하락함. 하지만
이 손실은 값비싼 국내 제품으로 보상되어, 손실은 GDP 손실의 1~2%수준을 넘지 않음.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가장
큰 피해를 입지도 않음. 당시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네덜란드로 GDP의 17%였음. 대공황
기간 네덜란드의 GDP는 8%후퇴에 불과함. (미국은 동기간 26% 후퇴)
1914-1944년 세계
무역량은 30년간 전례없이 침체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GDP는 2번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2배로 증가함. 통념과 달리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대공황을 일으키거나 심하게 만들지
않았을 것.
관세 전쟁으로 피해를 본 것은
세계 경제나 세계 무역이 아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고 무역은 신속하게 이내 회복됨. 피해는 교역으로 인한 정치적 도덕적 유익. 즉 평화.
미국은 2차 대전이 끝나자 지난 세기 자신들이 올린 관세장벽을 무너뜨리는 길고 어려운 작업을 시작함. 세계 경제와 여러 국가의 처치를 살핀 후 미국 국무부는 ‘무역 및
고용의 확대를 위한 제언(a proposals for the expansion of trade and
employment)라는 보고서를 냄. 이 보고서는 전시에 작성되었으나 스미스, 라키도, 코브던 헐의 정신에 기반.
아수라장인 전후 세계질서를 수습하며, 동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함.
“제한적이고
일시적인 힘으로 우리가 살고 싶은 세계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국제연합의 승리로 주어진 큰 상이다.”
The main prize of the victory of the United
Nations is a limited and temporary power to establish the kind of world we want
to live in.
원문: https://fraser.stlouisfed.org/files/docs/historical/eccles/036_04_0003.pdf
이 보고서는 과거에 발생한 실수들은
나열하고, 1880년 이후 국제 무역을 저해한 보호무역주의 완화를 협상할 대안까지 설명함. 이후 미국은 자급자족 지지자에서 새로운 국제 무역 질서의 전도사로 180도
변신함.
1945년 미국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영국을 개방시킨 거임. 영국은 전후 과도한 부채로 현금을 유출시키지 않기 위해 수입을
제한하고자 했으나, 미국은 영국에 자유무역을 관철시킴. 전후
미국은 세계 GDP 절반을 차지하는 경제 초강대국에 세계대전 승전국이었으므로 미국의 농민, 근로자 자본가 등등 모두 외국과의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았음.
이후 GATT, WTO 이거 다 아는 얘기.
‘집단 행동의
논리’
자유무역은 인구 대다수에 적당한 이익을 주지만 특정 산업과 직업에 종사하는 소수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핸리 마틴,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등 자유무역의 전체적인 이점을 설명함. 이들도 소수의 무고한 사람들이 자유무역으로 해를 입는다는 것을 라고 있었지만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음.
자유무역의 딜레마는 처칠의
민주주의 같은 거임. “민주주의는 이따금 시도된 모든 다른 형태의 정부를 제외하고 최악의 정부형태다.” 최선은 적당한 이익을 보는 대다수가 조금씩 모아서 막대한 피해를 입은
loser를 도와주는 건데….
끝.
근대 세계화는 4시기
1기: 1830-1885: 운송 및 통신 비용이 빠르게 하락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관세(미국 제외)로 무역량이 크게 증가하며, 임금,지대,임차료,금리가 세계적으로 수렴
2기 1885-1930 아메리카대륙,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우크라이나의 농산물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유럽의 보호무역론자들의
반발을 일으킨 시기
3기 1930` : 스무트-홀리 관세법 통과
4기 1945년 이후: 50년간 세계무역의 실질가치는 연간 6.4% 수준 증가, 세계 무역량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5 à 17.2%로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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