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휴가
올 휴가도 작년에 이어 속초에 다녀왔습니다. 속초에서 2박 그리고 양양에서 2박. 광복절
연휴라 약간 걱정했는데, 새벽 6시에 집에서 출발하니 서울-양양 고속도로와 동해고속도로를 타니 3시간이면 속초에 도착합니다.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되며 서울에서 속초 접근성이 좋아진 이후
갈때마다 새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미제 문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벅스 그리고
Drive Thru도 많이 있고요.
바닷가에서 애들을 놀릴 생각으로 속초에 갔던 것인데, 나흘 내내 너울주의보가
있어서 바다에는 제대로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모래놀이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영랑호에서 애들과 자전거를
타고, 워터파크에 가서 시간을 보냈네요. 그것도 나름 괜찮았습니다.
속초에는 저희 아이 유치원 시절 친구가 있습니다. 저희와 같은 동네
살던 친구였는데, 그 부모님이 애들 어릴 때 자연에서 키우고 싶다고 여러곳을 물색하던 끝에 속초를 낙점했습니다. 지금 속초에서 다니는 초등학교에 1/4정도가 외지 사람들이라고 하더라고요. 이집 부모와 비슷한 생각으로 속초에 온 집이 꽤 있단 말입니다. 아이들에게
여름 날만 허락된다면 집 앞에 있는 해수욕장에서 뛰어노는 삶을 선물할 수 있는 능력이라니. 신체가 묶여
있는 저 같은 월급쟁이는 퍽이나 부러운 부분입니다.
속초의 명당
물론 이집은 속초에 몇 년만 살다 갈거라 해수욕장에 인접한 아파트를 구했습니다만, 속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호수 뒤의 집이 더 인기가 좋다네요. 짠기도
좀 가시고, 아무래도 해수욕장 근처는 관광객과 일상의 분리가 어려울 테니. 특히 여름철은 괴롭겠죠.
작년에 갔을 때는 아들 친구네 아빠가 속초집을 살까 말까 하다가 안 산 것을 매우 아쉬워 했는데, 올해는 별 얘기 없더라고요. 참고로 속초 대장 청호아이파크는 국평기준으로
21년말에 7억도 돌파하여 강원도 최고가 기록을 썼던 아파트입니다. 현재는 3억대 후반에서 거래되고 있는거로 보입니다. (이야.. 저걸 7억에
때린 사람은 ㅋㅋㅋ) 그리고 8월에 분양하는 속초의 힐스테이트는 국평 평균 분양가가 5.7억정도 하니 속초도 이제 만만치 않긴 합니다.
아무튼 속초는 아파트가 새로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봐서 살아있는 도시는 분명합니다. 특히 양양, 낙산만가도 80~90년대
지었던 모텔과 유스호스텔 그리고 콘도 등이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는 것과 대비되죠. 그리고 강릉만 가더라도
70년대 지은 주공아파트가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 강릉보다는
속초가 더 핫해보입니다. 따라서 속초는 좁은 곳에 1970년부터
2020년대 주거지가 한데 혼재해 있습니다.
속초의 교육열
또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는데, 속초에서 극성인 엄마들은 강릉으로 애들을
라이딩해서 학원을 보낸답니다. 속초에서 강릉까지 왕복 170km에
톨비만 7,000원, 유류비 2.5만원인데. 속초에 초등 영수학원이 성에 안 차 강릉까지 간다고
합니다.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학원이 그렇게
좋으면 그냥 서울에서 학원보내는 것이ㅋㅋㅋ
아무튼 애들이 어려서 그런지 1년에 1번정도 보내는데도 어제 만나고 헤어진 친구처럼 어울려서 잘 놉니다. 낚시도
하고 모래장난도 하고.
동해안 해수욕장을 보니 대부분 옛날보다는 관리를 잘 합니다. 화장실
청소도 하고, 불꽃놀이도 못하게 막고요. (그래도 꾸역꾸역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 과태료 때려야) 쌍팔년도에는 낮에는
백사장에서 라면 삶아먹고, 저녁에는 술먹고 난리 쳤는데 참 세상 많이 좋아졌습니다.
숙소
숙소는 라마다 호텔에서 잤습니다. 속초에서는 보통 롯데리조트에서 묶는데
이번엔 갑자기 가게되어 빈방도 없고, 그나마 있는 호텔방은 100만원에
육박해서 라마다에서 자봤습니다. 좁긴 했지만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바로
옆에 반얀트리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레지던스로 분양도 하고 호텔로도 하고 그러는거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이 후 두밤은 낙산에서 잤습니다. 낙산의 망한 모텔과 유스호스텔이
을씨년스러움을 자랑하는 가운데 급하게 호텔로 리노베이션한 곳에서 잤습니다. 싸서 잤는데 콘도를 급하게
호텔로 바꾸다보니 방의 생김새가 껑충하고, 단순한 서비스 대응도 허우적 거리긴 합니다. 싸게 운영하려다 보니깐 여기저기 구멍이 보이는데, 안전사고등에 취약할
것 같습니다. 또 싼 숙소에서 묵으니 시끄러운 젊은 친구들이 좀 같이 묵는 것도 피곤하네요.
맛집
보통 여행을 가면 ‘현지인들이 다니는 맛집’을 찾아내려고 애씁니다. 이들이 현지인들이 찾는 맛집을 찾아내려는
이유는 외지인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음식점을 배제하려는 목적일 겁니다. 그런데 실상 현지인들이 다니는
맛집은 보통 외지인들도 다니는 프랜차이즈거나 아니면 현지인의 입맛에서는 맛이 없는 시시한 것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면 소득과 맛집은 비례하니깐요. 따라서 매우 안타깝게도 국내여행에서 서울에서보다 더
맛있는 집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세인들이 그토록 찾아내고 싶어하는 ‘현지인들이 다니는 맛집’은 사실은 ‘여행가서 가볼만한 맛집’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간극이 어떤 사업기회를 만들어 냅니다. 이건 제주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제주의 문화적, 역사적, 지리적 음식과 전혀 무관한 음식들이 여행객들에게 인기를
끕니다. 베트남 쌀국수집이나 아님 골목식당에 나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돈까스 집, 미국식 바베큐집, 햄버거집, 피자집, 아니면 한국인들이 환장하는 여러 일본요리를 하는 집들이 그렇습니다.
속초도 마찬가지인데, 속초에 서울사람들과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제주와
비슷한 사업기회가 생기고 있습니다. 속초에 현지인들이 다니는 맛집이 성에 차지 않자, 아예 외지에서 속초에 맛집을 차리는 거죠. 줄을 서고 웨이팅이 심한
집들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속초에서 이탈리아 음식이라든지 베트남 음식이라든지 후토마키라든지. 제가 음식점에서 줄서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11시에 가서 먹거나
아니면 아예 늦게가서 먹었는데, 뭐 다들 서울의 음식점과 비교해도 평타이상으로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가격 역시 서울만큼 받는데 속초의 싼 임차료를 고려할 때 괜찮은 사업기회인 거 같습니다. 즉 서울에서 피터지게 장사할 필요없이 속초에서 저렴한 임차료를 즐기며 속초살이 하며 요식업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만, 모든 식당들이 operation상 아마추어 같은 느낌이 많이 납니다. 음식을 서빙하는
속도나 종류등이 최적화되어있지 못해서 빨리가서 시켜도 음식이 나오는 속도가 너무 늦습니다. 조리방식이나
메뉴 종류 등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정확하게 셈을 해보진 않았으나, 어차피 속초에서 장사할 거면 요지에 있지 않아도 되므로 임차료가 싼 부지에 맛집을 내면 기회는 무궁무진해 보입니다.
아무튼 다 괜찮았는데, 그 중에 쌀국수집은 특히나 맛있었으므로 소개합니다. 매자식당이라는 집인데, 역시 볶음밥과 이것저것 시켜봤습니다. 제 생각에 딴건 먹을 필요 없고, 쌀국수만 먹으면 됩니다. 면이 overcook여서 이걸 잘 만든 쌀국수라고 봐야 할지는
좀 논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추천하는 이유는 이집 쌀국수 국물은 여태껏 한국에서 먹은 쌀국수 집 중
원탑입니다. 고기를 아끼지 않고 끌여낸 진한 고깃국물. 속초가시면
한번 드셔보여유. 역시 숙주나 다른 것들은 리필을 해주지만, 국물은
리필해주지 않습니다.
이집 역시 오퍼레이션에 개선점이 많은데, 속초의 젊은 맛집들은 대부분
다 오퍼레이션이 후집니다. 오히려 오퍼레이션의 정점에 있었던 건 강릉에 있는 소머리국밥집이었습니다. 이집은 정해진 그릇만 팔고 문을 닫고 아침 10시반에 가서 줄 서지
않고 먹었으나, 11시에 나올 때는 꽤 많은 대기가 있었습니다. 이
집은 단일 메뉴(소머리 국밥)만 팔고, 심지어 소머리수육도 팔지 않습니다. IT 기기에 신세를 지지 않고
사장님이 수기로 웨이팅 리스트를 작성하는데 작성하는 방식, 안내하는 방식, 내오는 속도와 동선등이 예술에 가까웠습니다.
아무튼 속초는 갈 때 마다 애들 더 크기전에 당일치기로 자주 오자라고 처와 얘기하긴 하는데, 잘 안 되네요. 올해 남은 날 중 날 좋은 날에 혹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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