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7일 금요일

미국-중국 패권전쟁의 결과

 

결과는 뻔하다.

 

1. 이데올로기 경쟁

미국과 소련이 냉전을 벌일 때 소련에는 그래도 명분이 있었다.

미국은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위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서방세계의 핵심가치로 내걸었고,

소련은 공산주의. 노동자를 위한 세상. 능력대로 생산하고 필요대로 소비하는 평등한 세상을 내걸었다.

물론 파시즘과 전체주의의 광기, 그리고 현실과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잔인한 사회실험임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미국을 필두로하는 서방의 가치에 대응하는 공산권의 가치라는 것이 있엇다.

하지만 중국에게 소련만큼의 명분이라도 있는가? 미국에 대응할 만한 정신체계나 사회의론이 있는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대표적인 친중파 도올은 2000년대 ebs 노자 강의를 시작하며 앞으로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대체할 텐데 세계를 이끌 이념이 현재 중국에겐 없다. 그래서 중국도 미국의 물질문명에 대항하는 이념을 찾아낼 것이고, 맑스의 지류에 불과하니 중국의 고전에서 인류의 미래 비전을 찾지 안겠냐?”라고 했는데 이 역시 현대 의학이 완벽한 것이 아니니, 한의학에서 대안을 찾아보자는 수준의 논의에 불과하다.

현재 중국의 시진핑과 중국의 이념은 무엇인가? 미국편이 아닌 중국에 붙는다면, 차이나 머니. 중국의 돈자체를 빼고 중국이 제시할 수 있는 이념이나 비전 자체가 없다.

미국의 자유와 인권이 여전히 더 우월한 명분이며 (아마 이것이 문명의 최종 답이 아닐까 싶기는 한다.) 미국의 자본주의의 여러 모순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체제 내에서 문제점을 개선해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2. 체제 경쟁 그 자체

베를린 장벽이 건설된 것은 1961년에 이르러서의 일이다. 독일의 분단을 1949년으로 본다면 무려 10년이 훌쩍 지나 베를린에 장벽이 쳐진 것이다. 그 전에 베를린장벽으로는 200만명이 오갔다. 수십만명의 젊은 동독인, 동독 엘리트인 들이 서베를린으로 넘어간 뒤 행방불명되자 1961년 기습적으로 장벽을 쳤다.

체제 경쟁의 핵심은 체제를 경쟁한다는 점이다. 어떤 체제에서 사람들이 더 살기 원하는가? 하는 점이 장기적으로 그 체제 경쟁의 결과를 자우한다.

미국에서 살고 싶은 중국인이 더 많은가? 아니면 중국에서 살고 싶은 미국인이 더 많은가?

 

3. 미국의 PCWokeism

현재 민주주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포퓰리즘이다.

즉 권위주의 독재체제와 달리 모든 개인의 정치적 입장과 발언권을 존중하다 보니, 다수가 틀린 이야기에 매료되는 경우가 있다. 있다기 보다는 요즘은 이것이 대세다.

민주주의 체제 사람들이 국가의 미래를 망치는 선택을 집단적으로 추종하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Wokeism을 히피의 연장선으로 본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이 월남전에서 패망하며 1970년 미국에는 히피와 냉전에서 질 수도 있다는 음울한 사회적 분위기가 10여년간 이어졌다. 1,2차 오일쇼크가 터졌고 미국은 만성적인 인플레이션과 스태크플레이션의 수렁에서 좀처럼 탈출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이 결국 소련에 굴복했는가?

는 아니다. Wokeism이 미국의 승리를 이연 시킬 수는 있어도 결과를 바꾸지는 못한다.

 

체제경쟁이라는 것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거시적인 사건이므로 이런 자잘한 국소적 이벤트가 대세를 바꾸지 못한다.

 

결론

대세는 결정되어 있다.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도 알고 나도 알고 여러분도 안다. 사실 시진핑이 도게자 박고 순응하는 것이 미국에도 좋고, 중국에도 좋고, 우리에게도 좋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질 게임을 하고 있는가?

이것이 역사의 난감함이다. 어떤 다이나믹스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 마치 북한의 김정은이 도개자 박고 북한을 서서히 개방하는 것이 4자 모두에게 이득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 없는 것처럼.

2023년 4월 6일 목요일

Chip war / Chris Miller 대충 정리(2/2)

Lithography

1992Intel CEO Andy Grove2억 달러짜리 R&D 프로젝트 고심. 그것은 EUV(Extreme Ultraviolet). 자외선을 이용해서 12.5 nanometer짜리 정교한 파동 구현이 가능한가? 반도체 성능이 높아지며 과거보다 훨씬 정교한 Lithography 필요해졌지만 이를 구현할 마땅한 기술 없었음. 자외선으로 그리는 한계가 248 또는 193 nanometer.

 

그럼 EUV 개발해보라고 2억 달러 어떤 Lithography 회사에 쏴줘야 하나? 미국 Lithography회사 GCANoyce 불러다가 돈지랄 했는데 망했고, 그렇다고 Lithography 업계 탑인 NikonCanon은 일본회사라 안 되고 남는 건 네덜란드 회사 ASML 밖에 없었음.

 

ASML1984Philips에서 내부 Lithography 조직 분사해서 만든 회사임.

ASML의 특장점

1. ASML은 후발주자였기 때문에 시장에서 좋은 거 이거 저거 사다가 회사 꾸렸음. 일본 회사들이 폐쇄적으로 자사 제품만 샀던 것과는 상반됨.

2. 지정학적으로 네덜란드에 위치 1980년과 1990년 미국과 일본이 무역분쟁하고, 미국이 일본 DRAM 두들겨 패고 있는 상황에서 업계 선두의 CanonNikon에게 미국이 뭘 해줄리 만무했음

3. ASMLPhilips에서 분사한 회사. . 그러고보니 대만의 TSMC의 대주주가 Philips. 그래서 TSMC와 끈끈한 관계. 1989TSMC에서 불나서 lithography 기계 탔는데, ASML19개 발주하며 대형 수주하면서 ASML 일어나는데 도움 많이 줌.

 

Intel이나 미국정부나 Lithography하면서 걍 ASML 밀어줌. (배신자 일본 회사는 밀어줄 수 없잖아!) 미국 정부는 ASML 밀어주면서 공장은 미국에 지어라. 미국인 직원 뽑아라. 미국에다 우선 팔아라. 이런거 시킴. ASML은 울며 겨자먹기로 미국말 들어줬지만 어쨌든 ASML의 핵심 R&D는 네덜란드에서 함.

 

군말 없이 ASML은 미국 정부 말 들었고, 2001년 미국의 마지막 남은 Lithography회사 SVGASML이 인수하게 허락해 줌. 부시 정부는 기술 유출에 대해서도 꽤 관대했음. 군사 기밀과 연관되는 특정 기술 빼고는 다 해외에서 하게 해 줌.

 

1992년에 IntelASMLEUV 기술 개발해보라고 2억불 박았는데 ASML은 이거 하느라 20년을 보냄.  EUV는 이 시대 가장 큰 기술적 도박(the biggest technological gamble of our time)으로 평가. 미국의 국가 연구소에서 EUV기술을 풀 수만 있다면 무한한 돈을 벌지만, 풀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함.

 

2012년에 ASML EUV tool을 만들었다고 알려지자, TSMC, 삼성, Intel 등등 세상 반도체 업체들이 돈 싸들고와서 줄 섬. 인텔은 즉석에서 40억불 추가 투자.

 

EUV(Extreme Ultra Violet) lithography란 무엇이냐.. 좀 살펴보자.

 

이것도 미국 과학자들이 처음에 생각해 냄. 가시광선의 파장은 수백 나노미터인데 색마다 다름. 반도체 업계는 자외선 파장을 이용해서 249193 나노미터까지 찍어낼 수 있었음. 그런데 반도체가 집적도가 높아지면서 이를 찍어낼 수 있는 더 정밀하고 작은 무언가가 필요했고 UV가 그 대안. 그러니깐 EUV를 자유자재로 쓸 수만 있다면 13.5 나노미터까지 찍어 낼 수 있음.

 

문제는 EUV가 기술적으로 다루기 거의 불가능했다는 것.

Cymer라는 레이저 전문회사가 있었음. 물론 이것도 UCLA, UCSD 나온 사람이 창업한 미국회사

이 회사의 엔지니어들이 EUV를 뽑아내는 접근법을 하나 찾아냄.

진공에서 3천만분의 1미터 크기의 주석 공을 200 마일의 속도로 쏨. 이 주석에 레이저를 2번 쏴서 첫번째 펄스로 예열. 두번째 펄스로 태양 표면보다 몇 배 뜨거운 약 50만도의 플라즈마로 폭발시킴. 이 폭발 과정을 초당 5만번 반복하면 칩을 제조하는데 필요한 만큼의 EUV를 생성할 수 있음.

2005년에 Cymer2명의 엔지니어가 독일의 Trumpf라는 세계 최고의 CO2 기반 레이저 회사 찾아감. 독일의 정밀 기계 이 회사 레이저로 깎음. Cymer Trumpf 10년 같이 연구한 끝에  457,329개의 부품으로 이뤄진 저거 할 수 있는 초강력 레이저 쏘는 기계 만듬.

 

CymerTrumpf는 주석을 폭발시킬만 레이저는 손에 넣었고, 다음 과제는 이 빛을 모아서 실리콘 칩에 쏠 거울을 만드는 일. 이번엔 세계 광학의 남바완 짜이즈(Zeiss)를 찾아감.

 

Zeiss의 최우선 도전은 EUV가 여간해서는 반사되지 않는다는 것. 13.5나노미터의 EUVX-ray와비슷한 파장. 따라서 물체에 반사하기보단 흡수 봬 버림. 그렇다고 Zeiss가 이거 안 하면 누가 하겠음? Zeiss도 어떻게 만드는지를 먼저 연구함. 이론적 답을 찾음 100겹 몰레브덴 실리콘 거울 개발하자. 각 레이어는 2나노미터 두께임.

 

인류가 이런 거울을 만들 수 있을까?

결국 이걸 Zeiss가 만들어 냄. 세계에서 가장 매끈한 물체이고, 불순물이 극도로 낮은 표면. 이 거울이 독일 만하다면, 가장 큰 티끌이 1/10 밀리미터 수준임. 또 레이저가 얼마나 정확하게 반사되냐면, 지구에서 골프공을 던져 달에 맞추는 수준.

 

이렇게 불가해가 풀림. 네덜란드 엔지니어와 독일 엔지니어의 환상의 랑데부.

 

EUV로 세상이 바뀌었다. 중요한건 ASML은 네덜란드 회사긴 하지만 미국 기술로, 인텔이 펀딩 해줬다… TSMC와 삼성이 ASMLEUV를 갖고 놀면서 세상이 또 바뀜.

 

Fab

2000년대 후반 치열한 치킨게임 후에 DRAM fab은 일본의 엘피다, 미국의 마이크론, 한국의 삼성과 하이닉스 4개 회사만 남음. NAND는 삼성이 35%먹고, 하이닉스, 일본의 Kioxia, Micron, Western Digital 5개만 남음. 물론 DRAMNAND 모두 미국 fab의 점유율은 낮음.

AMD 창업주 Jerry Sanders는 상남자여서 Fab을 고집함. 2000년대에 미국 반도체 회사들은 Fabless로 가고 Fab을 아시아에 넘겨줌.

 

Fabless 혁명

원래 컴퓨터 그래픽은 반도체 start-up이 도전 할만한 니치 마켓. 설계만 잘해서 Foundry에 위탁생산하면 됨.

1) 1993Nvidia 창업. Nvidia3D graphicGPU 그 생태계 구축했음. Nvidia는 반도체 생산설비 없고, 전부 TSMC에 위탁생산. Fab 직접 만들라고 했으면 애당초 창업도 불가능했음. 2006 NvidiaCUBA 라는 소프트웨어를 출시. 그래픽 뿐 아니라 고속 computating도 가능해짐.

 

2) 정보통신 이론 교수 Irwin Jacobs1970년대 초반 휴대폰이 미래라고 판단. 당시 통신회사들은 무선통신 표준을 찾고 있었음. Jacobs는 무선전화를 특정 주파수에서 하는 것보다 여기저기 옮기며(frequency hopping)하는 거싱 더 유리하다고 주장. 대부분의 사람들은 Jacobs의 이론에는 동의했지만 구현하기 어렵다고 말함.

Jacobs가 통신사 설득하다 포기하고 걍 회사 차림. 이 회사의 이름은 Quality Communication. Qualcomm. 2세대 무선통신에서 라디오 스팩트럼에서 데이터 전송과 이에 특화된 칩을 만들어 성공. 역시 Fabless로 디자인만 하고 생산은 삼성과 TSMC에 위탁

 

3) 1세대 아이폰은 삼성 반도체 사용. iOS를 처음 돌린 건 삼성 반도체 ㅋㅋ 잡스가 보니깐 안되겠어서, 직접 칩 만들기로 결심. PA Semi라는 칩 디자인 회사 사서, 버는 돈 다 때려 부움. 2년 후 아이폰4부터 A4 애플 자체 개발 칩 탑재. 애플 제품은 매우 부드럽게 돌아가는데, 다 이 핵심 애플 자체 칩 때문임. 덕분에 아이폰 런치 4년 후에 전세계 스마트폰이 내는 이익의 60%를 아이폰이 먹음. 잡스의 판단 정확

 

 

대만 반도체

1985년 대만의 KT Li(리궈딩)Morris Chang 부름. 백지 수표 주고 조국의 반도체 사업의 부흥을 이끌어 달라고 부탁. Chang1980년대 TI 떠남. Chang TI가 극도로 효율적인 공정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 Chang Noyce Moore처럼 TI CEO가 되고 싶었음. 그의 나이 44세 대만으로 감.

 

1970년대 중반 Chang은 이미 고객이 설계를 해오면 제작만 해주는 반도체 사업을 구상함. 1976TI 경영진에 이 아이디어 들고 갔다가 까임. 당시 Fabless 회사가 없던 땐데, Chang은 곧 그런 Fabless가 많이 생길 것이라고 경영진을 설득했으나 경영진은 지금 사업모델로 우리가 충분히 돈 많이 벌고 있는데 뭐하러 모험을 하냐하며 시큰둥

 

Chang은 이 아이디어를 잊지 않고, 1980년대 KT Li의 대만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실행하게 됨. 이 회사가 바로 TSMC. 대만 정부가 48% 출자. Chang은 옛 동료들이 포진해있는 TIIntel에 가서 투자 요청했다가 까임. 대신 네덜란드의 Philips58백만불 투자하고 지분 27.5% 받아감(지금의 TSMC X ASML 관계를 보면 대단한 복선) 그리고 나머지 지분은 대만정부가 대만 재벌들에게 강매함. 이렇게 대만반도체제작회사(TSMC) 탄생.

 

TSMC는 칩 디자이너들에게 reliable partner가 목표. 고객과 경쟁하지 않으며 고객의 성공을 돕는다. TSMC와 파운드리 판에서 비벼볼만한 회사는 그나마 2005년부터 파운드리 시작한 삼성이 유일. 삼성은 반도체 디자인도 하는 회사라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라는 파운드리 업계의 불문율을 어기는 셈. 사실 삼성은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정도가 아니라 스마트폰 만들지, 각종 전자기기 만들지 ㅋㅋ 고객의 핵심경쟁자 그 잡채임.

 

Chang2000년부터 후계자 찾고 2005년에 대만 반도체 산업의 아버지 living legend로 거의 국부급 추앙을 받으며 74세의 나이로 CEO 은퇴함. 종신명예회장 ㄱㄱ 했는데

 

은퇴하고 얼마 안가 2008GFC 터짐. 세계 IT 소비 급랭하고 따라서 반도체 주문도 줄줄이 취소. TSMC CEO Rick Tsai가 남들이 다 하는 것처럼 직원들 짜르고, 비용절감하고 앉았음. Chang이 답답해서 다시 나옴. Morris Chang은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임. TSMC40nm에 사활 검.

 

이때가 더 투자해야 하고, 때 마침 나온 아이폰이 game changer라고 정확한 판단. ChangTSMC 고객들 주욱 불러 모음. 이건 TSMC가 고객들과 경쟁하지 않는 독특한 포지션이라서 가능했음. 고객끼리는 서로 경쟁함. Fabless, 지적재산권 팔이, silicon wafer 등등. 쭉 밸류체인 모아보니, 12개 회사 + TSMC가 당시 반도체 제왕 Intel과 삼성을 합친 것보다 매출이 더 컸음. 그리고 이 유니버스의 중심에는 TSMC가 있었음. “야 힘들더라도 이때 더 투자해야 돼 니들 알겠지. 위기 지나간다.”

 

Fabless 혁명 중에도 AMD 창업자 Jerry Sanders는 상남자(macho swagger)여서 직접 반도체 설계와 생산 모두 고집. Sanders 은퇴하고 5년 뒤에 AMD는 설게만하는 AMD와 생산만하는 Globalfoundaries로 분사. 반도체 고도화되면서 2D로 추가 회로 그릴 한계에 봉착하자 3D 트랜지스터 개발 시작. GlobalFoundries가 여기서 가능성 보여줌.

 

중국 반도체

공산당이 중국을 접수하지 않았다면, 아마 일본, 대만, 한국이 받았던 미국 반도체 산업의 세례를 중국이 대신 받아갔을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1949년 공산당이 집권한 후 서방과 담 쌓음. 중국의 엘리트들은 중국 본토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이나 대만으로 감.

 

마오쩌둥은 집권 후 중국의 과학기술과 반도체 산업을 엽기적으로 멸종시킴. 마오는 모든 기술을 공산당이 직접 개발하자고 독려. 교육이 미천한 사람들을 모아서 최첨단 산업을 융성하겠다는 기상천외한 목표. 마오는 해외 기술과 아이디어를 모두 배척.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설비 금수조치를 취하기는 했는데, 그 전에 마오는 중국이 미국산 반도체 장비 못 사게 이미 엠바고 때림 ㅋㅋ 심지어 마오는 전자제품은 태생적으로 반-사회주의적이라고 생각해서 탄압.

 

문화대혁명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한 줌의 과학기술과 과학자도 멸종시킴. 문혁을 경험한 중국 과학자들은 논물을 개재하지도 않음. Research publication은 공치사(self-glorification)한다고 여겼기 때문. 아무튼 중국이 희대의 자해쇼해준 덕분에 일본, 대만은 물론 한국까지 순번이 돌아옴.

 

중국 상황이 얼마나 골때렸냐면 1979년 중국은 반도체를 생산할 아무런 장비도 없었으며, 중국 전역에 컴퓨터가 1,500대도 안 됐음.

 

마오가 죽고, 다음해 덩 샤오핑이 권력을 잡으며 과학기술” “four modernization” 하면서 뒤늦게 과학 기술과 반도체 산업 역설.

 

중국 정부는 반도체에 필사적이었나 결과는 다 시원찮았음. 일본 NEC와 합작사 만들어주고 각종 특혜 몰아줬는데, 깍쟁이 NEC는 중국인들에게 허드렛일만 시키고, 핵심은 일본 기술자만 시킴. 외국투자 받아 상하이에 Grace Semiconductor라는 회사도 만들었는데 망함.

 

Richard Chang이 중국 반도체의 아버지. 1948년 난징에서 출생. 미국 이민 후 TI에서 Jack Kilby와 일함. Fab 전문가. TI 시설 미국, 일본, 싱가폴, 이태리 돌면서 다 돌려봄. Richard Chang은 외국 도움이나 정경유착 안하고 중국의 반도체 회사 만듬.

 

이 회사가 SMIC(Semiconductor Manufacturing International Corporation). 전략은 TSMC가 했던 거 똑같이 따라하기. 중국정부는 대만정부가 TSMC에게 해줬던 것 똑같이 따라함. 직원 1/3은 해외에서 수입. 2000년 후반 드디어 세계와 기술격차 2년으로 좁힘. 2004년 뉴욕증시 상장

 

시진핑 나와서 일대일로하면서 반도체에 국가 역량 올인.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고도화된 AI 독재 감시국가임. 이것이 가능한 것은 NvidiaIntel . 중국은 반도체 사는데 돈을 너무 많이 씀. 당연이 원유를 뛰어넘어 중국이 가장 많이 수입하는 상품 1. 2017년에만 2600억불어치 반도체 수입했는데, 이는 사우디가 그 해 수출한 석유나, 독일이 그 해 수출한 자동차 수출액보다도 훨씬 큰 액수.

 

반대로 중국이 이렇게 반도체를 사니, 한국 수출의 15%(생각보다 작다.. 와 국뽕돋는다 ㅠ) 싱가폴 수출의 17%, 말련 19%, 필리핀 21%, 대만 36%가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

 

중국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질서에 일본, 한국, 대만, 네덜란드처럼 편입되지 않고, 미국을 대체할 반도체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 중국은 지금까지 다른 산업을 접수한 전략을 그대로 반도체산업에 적용함.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2016년 해외 반도체 의존도 85%2025년까지 30% 수준으로 낮추고 중국제로 대체

 

1. 미친듯 돈을 붓는다. 2. 미국에서 공부한 과학자를 귀국시킨다. 3. 해외선도업체와 J/V하고 중국시장을 열어주는 대신 기술을 빼낸다. 4. 억만금주고 해외 핵심 인재 사온다.

 

근데 TSMC와 삼성이 붓는 돈의 양이라는 것이 중국이 그동안 도장깨왔던 여타 산업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음. 중국 공산당 정부도 매우 버겁. 돈지랄을 하면, TSMC와 삼성은 그거보다 더 빠르게 더 돈지랄 시전.

 

소프트뱅크의 Arm, IBM, AMD 등 영미 회사들이 2010년대 경영 어려웠을 때 중국에서 JV하며 핵심 기술 누출됐다는 의혹 받고 있음.

 

화웨이는 지적재산권 쌩까고 공산당의 비호아래 150억불씩 R&D 쓰면서 큰 기업. 이 정도 R&D비용 쓰는 회사 전세계에 Google, Amazon, Merk, Daimler, VW 정도 밖에 없음. 아무튼 화웨이는 IBM19991년에 컨설팅비만 5천만불 줌.  2010년말 화웨이는 HiSilicon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스마트폰용 칩을 개발하고, TSMC에서 만들게 했는데, 이거로 화웨이는 단숨에 TSCM #2 고객 됨. (아 갤럭시는 하늘나라로 ㅠㅠ)

 

화웨이는 5G에서 정점에 있고, 5G라는 것이 차기 군사기술의 핵심 of the 핵심. 미국이 굉장히 불편해 하는 부분. 그래서 미국이 화웨이 짓밟음.

 

AI는 빅테이터가 중요한데, 중국은 13억의 테스트 배드가 있음. 쇼핑 습관, 얼굴 인식 등ㅋㅋ 13억 마루타로 개발해서 다른 어떤 나라도 상대가 되지 못함.

 

중국이 반도체 패권전쟁에서 미국보다 유리한 지점이 있다면, 모든 반도체 회사에게 미국 정부보다 중국이 훨씬 더 크고 중요한 시장.

 

물론 아직 미국과 그 동맹들의 반도체 기술 수준은 중국과 격차가 큼. 물론 화웨이의 5G 같은 것도 있지만 중국이 solar panel에서 미국을 몰아냈던 것처럼, 미국이 허망하게 중국에게 지지는 않을 것.

 

미국은 반도체 전쟁에서 실기를 함. 오바바 정부 때는 중국산 철강과 패널로 싸우고, 오바마 정부 종료 6일을 남기고 반도체의 심각성을 인지함. 다시 말해 오바마 정부의 핵심 관료 중 반도체 산업을 알고 있는 참모가 없었다는 말이기도 함. 그리고 트럼프 나오고 우왕좌왕 현재ㄲ자ㅣ..

 

패어차일드가 반도체를 시작하고, IT가 회로기판을 만들며 세상을 바꾼 이래, 모든 반도체는 미국의 의도대로 돌아 감. 지금까지 최초의 반도체 기술의 A-Z가 다 미국에서 나왔고, 미국이 점지하는 나라는 한국처럼 부흥했으며, 미국에 찍힌 나라는 일본처럼 사그라짐.

 

(물론 상당한 엄살이지만) 미국과 소련이 패권전쟁을 할 때, 최초의 인공위성도 최초의 우주인도 모두 소련의 성취임. 그래서 미국이 긴장하고 있고, 미국이 칩단 미사일 쏴서 걸프전 이긴 것 처럼. 향후 전쟁은 시스템전임. 이게 무슨 터미네이터 나와 싸운 다는 것이 아니라 사물인터넷 같은 거로 드론 같은 애들이 긴밀하게 공조한다는 거임.

 

반도체는 미국과 중국이 또 너무 얽혀있어서 이거 풀기가 정말 만만치 않음


하지만 미국은 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2023년 4월 1일 토요일

Chip war / Chris Miller 대충 정리(1/2)

Chip war / Chris Miller


2/3정도 읽었는데 꽤 재밌음. 영어로도 읽을만 하니 사 읽으시거나 번역본 나오면 읽어보시길 추천드림 ㅋㅋ


Intro

세계2차 대전은 철과 알루미늄에 의해서 승패가 갈렸고, 냉전에는 핵무기 경쟁을 했고,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computing power가 결정할 것. Machine learning, missile system, 자율주행, 드론 등등 다 최신 chip 사용

 

202010월 기준 chip 산업의 매출 1/4이 스마트폰. iPhone 12 배터리 관리, 블루투스, 와이파이, 네트워크, 오디오, 카메라 등등 최첨단 processor chip 필요. Apple은 이중 직접 만드는 chip 없음. 메모리chip은 일본 Kioxia, Radio frequency chip은 캘리포니아의 Skyworks, 오디오 chip은 오스틴의 Cirrus Logic, 그리고 가장 복잡한 프로세서 아이폰 OS는 직접 만들지 못함. 이거는 TSMC에서 만듬. 애플은 아이폰121억대 이상 팔았는데, 여기 들어가는 A14 processor chip118억개의 트랜지스터로 구성. 1961년 세계 최첨단 chip4개로 시작.

 

Chip은 실리콘 밸리의 시작과 끝임. 미국의 도구, 소프트웨어, 고객을 바탕으로 대만, 한국, 일본이 협업. 모두 생산기지는 미군의 기지이기도 함. 1960년 베트남전 패전 이후, 많은 나라들은 미국 국방력에 의한 패권에 의문을 표하기 시작했지만, Chip으로 다시 엮어 내고 화려하게 부활

 

chip의 시작

트랜지스터가 진공관을 대체할 핵심기술로 부상. 트랜지스터 연구한 사람들이 노벨상 탔는데, 그중 Shockley는 이거로 돈을 벌어보고 싶었음. Bell 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 특허를 25천불에 팔아서 언능 사 옴. ShockleyPalo Alto에 회사 차리고 운영했는데 경영에는 영 재능이 없어서 핵심 엔지니어 8명이 퇴사.

 

8명이 회사를 차렸는데, 이 회사가 그 유명한 반도체 산업의 시작 Fairchild

8명이 모두 기라성 같은 사람들로 자람.

Eugene Kleiner : Kleiner Perkin, 세계 1VC 창업

Gordon Moore: Farichild R&D센터장, 무어의 법칙

Bob Noyce: 8명의 리더로 열정과 카리스마 넘치는 성공꾼. 엥간한 반도체 중요한 성공 다 일굼.

 

Fairchild를 야심차게 창업했는데, 반도체의 개념은 매우 명료한 반면, 현실에서 구현해내기가 드럽게 어려웠음. 수개월 후 NoyceHoerni’splanar method 이용해서 실리콘으로 트랜지스터 만들어 내는데 성공. 그럼 이제 이걸 누가 사주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데.

 

때마침 미국이 아폴로 프로그램 진행하며 NASA가 대량 구매해줌. NASA에 블록딜 ㅋㅋㅋ 팔기 시작하니 직원들 천명으로 늘어나고, 1958년 매출 50만달러에서 2년만에 2천백만달러로 증가.

 

Texas Instruments (TI)는 집적회로를 만들고 있었는데, 여기 사장은 Jack Kilby. TI는 집적회로 혁명 이뤄내는 회사.

 

1965Fairchild R&D 센터장 고든 무어의 Electronics Magazine과 인터뷰에서 앞으로 최소 10년정도는 반도체의 집적회로의 성능이 24개월마다 2배씩 증가할 것 같다.”라는 무어의 법칙 발표. 이 법칙대라면 10년후인 1975년에는 65K 짜리 트랜지스터를 만들게 되며, 인류 삶 전체를 바꾸게 되고, 노이스와 무어는 이때 이미 PCmobile phone의 시대를 꿈꿈. 개인의 반도체 소비가 가능하다는 말.

 

무어의 법칙으로 컴퓨터의 가격을 하락하는 거임. chip 만들기에서는 인건비가 중요하기 때문에 처음에 인건비가 싼 여자들 데려다가 생산함

 

1965chip72% 매출이 국방부에서 구매에서 나옴. 국방부 장관 로버트 맥나라마라가 국방비 예산 감액. NoyceFarichild chip 판매가격을 $20에서 원가도 안되는 $21/10로 낮춤. 더 많은 소비자들이 chip을 사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덕분에 미국에서 컴퓨터 판매 10배 증가. 1966Burroughs라는 컴퓨터 회사는 2천만개 chip 주문. (아폴로 프로그램의 20배 많은 양)

 

60년 중반 Fairchild가 첫 해외반도체 공장의 후보자로 홍콩을 검토했는데, 미국 인건비의 1/10수준인 시급 25센트에 불과했기 때문. 근데 다시 보니 대만은 19센트, 말련은 15센트였고 한국은 시급 10센트에 불과했음 ㅠㅠ.

 

1968년이 되자 컴퓨터 업계가 국방부만큼 chip 소비. Fairchild의 컴퓨터 시장 chip 점유율 80%.

 

Fairchild는 동부의 갑부들이 소유하고 있었고, 핵심 엔지니어들이 스톡옵션 좀 달라고 뉴욕에 가서 얘기하지만 너네한테 우리가 주는 월급이 얼만데, 무슨 빨갱이 같은 소릴 하고 있어?”라며 거절. Fairchild 공동창업자였던 NoyceMoore가 회사가 스톡옵션 안 주고, X도 모르는 애들이 참견한다고 빡침. 퇴사 인사 카드에 돈 더 많이 벌고 싶어서 퇴사해유..”라고 쓰고 나감 (I.. WANT…TO.. GET… RICH)

 

퇴사하고 새로 차림. 이 회사의 이름이 INTegrated Electronics.  INTEL. 전설의 시작

 

인텔은 2년만에 dynamic random access memory, DRAM을 만들어 냄. 그리고 이것이 컴퓨터가 기억하는 미래라고 말함. 그 전까지 컴퓨터는 자기판에 와이어와 링을 이용해 10을 기록해서 기억. DRAM chip은 실리콘에 기록. 이건 메모리계의 혁명. 게다가 대량생산도 매우 쉬움

 

DRAMCommodity 성격이 있음. 동일 디자인으로 쭉쭉 뽑아내면 여기 저기 범용으로 쓸 수 있음. Computing과 다른 Remembering chip. 규모의 경제가 중요.

 

인텔은 일본의 전자계산기 회사 부시콤에 1969년 납품하면서 사업 시작. 당시 전자계산기는 현재의 iPhone에 비견될 정도로 최첨단 개인기기. 계산기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과 재료가 다 최신. 심지어 전자계산기에 쓰이는 플라스틱도 뒷주머니에 넣어도 깨지지 않아야 하는 최첨단 폴리머.

 

 

일본 반도체


1962년 일본 총리 하야코 이카다가 프랑스 샤를드골 대통령 엘리제 궁에서 만날 때, 선물로 소니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줌. 1948년 소니 창업자 아키오 모리타는 벨 연구소에서 새로운 트랜지스터가 나왔단 얘기를 듣고, 소비 가전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혜안 발휘.

 

1953년 미국 출장가서 AT&T를 만나 트랜지스터 라이선스 생산 따냄. 소니는 일본의 저임금을 이용해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들어 창사 이래 첫 상업적 성공을 이뤘고, 아카다 총리가 드골 대통령에게 준건 단순히 라디오가 아니라 일본 경제의 시작.

 

원래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TI사에서 먼저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비용, 마케팅 등의 이유로 포기. 일본의 소니가 트랜지스터 라디오 상업화에 성공했음. 팔면 4.5%Fairchild에게, 3.5%TI에게, 2% Western Electric에게 돌아갔음. 미국 반도체 회사들 행복. 미국이 chip을 일본 완성 전자회사에게 팔면, 일본이 저렴한 현지 노동력을 이용해 완성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 모델.

 

이게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인데, 소니는 처음부터 완성품을 만들어서 팔았음. 뭘 만들어 소비자한테 팔지를 스스로 연구해서 팜. 선진국 제품 OEM하면서 시작한 한국 등 여타 전자강국과는 다른 특이한 케이스. 1979년 그렇게 워크맨이 세상에 나옴. 385백만대 팔고, 세상을 바꾸고, 음악시장을 바꾸고 일본 가전에 대한 인식을 일거에 바꿈. 그래서 전성기 일본은 세계 반도체 수요의 1/4 차지. 당연 세계 1위고, 처음에는 미국에서 부품을 사와서 일본이 기획하고 만들어 최종제품을 팔았는데, 나중엔 일본이 반도체도 만듬.

 

1964년 일본은 처음 미국을 개별트랜지스터(discrete transistor) 생산에서 따라잡았으나, 미국 회사들은 이미 훨씬 고도화된 chip 만들며, 격차는 서서히 줄어들다가 1980년이 되면 미국의 반도체는 지옥 같은 10(hellish decade)를 보냄.

 

1980년대 일본의 추격이 무서워짐. 미국의 Intel TI와 함께 일본 Toshiba, NEC DRAM 만들게 됨. 일본과 미국 반도체 회사들은 지적 재산권 재판에 얽혀있었고, 그래도 미국 반도체가 일본대비 우위라는 것이 대다수 실리콘 밸리인들의 생각.

, HPAndersonToshibaNEC의 추격을 심각하게 바라봤음. 일제가 불량률이 현저히 낮았기 때문. (0.02% vs. 0.09%)

1980년대 가전은 이미 일제가 전미시장 석권. Sony의 아키오 모리타는 자사 엔지니어들에게 최고 품질의 TV, 라디오 만들 뿐 아니라 아예 새로운 제품을 만들라고 항상 쫌.

 

1980년대 미국 반도체가 일본 반도체에게 밀렸던 이유는 자본조달비용(cost of capital).

볼커가 인플레이션 때려잡으며 금리 21.5%까지 올려서, 일본이 6~7%면 자금 조달하는 걸 실리콘 밸리에서는 18%줘야 함. 그뿐 아니라 일본의 Mitsubishi, Hitachi 같은 반도체 회사는 은행과 결탁해서 장기채 저리로 조달. 일본의 베이비 붐의 높은 저축율도 한 몫.

자신감 붙은 Toshiba, Fujitsu가 치킨게임에 돌입하며 미국 반도체 회사 곤경. 1980년대 일본 반도체 회사는 미국 회사들보다 60%더 투자. 인텔이 64K DRAM 세계최초로 개발했는데 5년만에 점유율 1.7%로 폭락.

1984Hitachi 800억엔투자, Toshiba 750억엔, NEC 11천만엔 등 세계 반도체 투자비의 45%를 일본회사가 집행했음. 1990년도에는 규모가 더 늘어 세계 반도체 투자비의 50% 차지.

 

일본이 패전하고 1951년 미국은 평화헌법을 통해 미국이 일본을 지켜주는 대신, 일본은 국방비를 GDP 1% 이상 지출하지 못한다고 못 밖아 놓음. 근데 일본은 국방비로 돈 쓰는 대신 그 돈 가져다 반도체 등에 엄청 투자함. 미국은 경제규모대비 5~10배 국방비 지출하면서 소련과 냉전하고 있었음.

 

미국이 보니깐. 미국 돈으로 일본 지켜주는데, 일본은 지들 국방비 할 돈으로 반도체 치킨게임하고 앉았음. 일본이 치킨 게임으로 미국 디램 업체 고사시키고 있으니 미국이 개빡침.

 

일본은 관세를 만들어 미국반도체 수입할 때 관세 세게 때리고, 자국 반도체 쓰도록 유도. 1986년에 반도체 관세 없앰.

 

1980년말 일본은 세계 lithography 장비 시장 70% 점유. 미국이 21%.

 

1987년 미국은 국방부와 반도체 기업이 참여하는 Sematech이라는 컨소시움 만듬. (chip메이커, 국방부 50:50 출자). 우리도 일본처럼 정부와 기업이 혼연일체로 반도체 업계에서 뭐 해보자. 일단 lithography에서 일본의 점유율이 너무 높으니 이거 대항할 회사 키워주자. 그렇게  Sematech이 미국 Lithograhpy 업체인 GCA에 출자한 돈의 절반 몰아 줌. 일본의 NikonCanon, 네덜란드의 ASML보다 GCA가 훨씬 뒤처졌던 상황. 미국 반도체의 레전드 Noyce 데려와서 총 지휘. 하지만 고객들은 이미 Nikon, Canon, ASML에 적응되어서 바꾸고 싶지 않아 함. 망함. 1988-19923천만불 잃음. Sematech에서 7천만불 쏴줬는데 공중분해 ㅋㅋ

NoyceFairchild, Intel 창업, Dram 상업화 등 성공했으나, Lithology앞에서 좌절.

 

미국 더 약오름 더 빡침.

 

SONY 창업자 아키오 모리타는 거물 of 거물이 됨. 월가와 워싱턴의 거물들과 인적 네트워크 있고, 뉴욕에서 사교계 거물 모아 놓고 일본식 티타임 갖음. 뉴욕 5번가와 82번가에 아파트 있었고, 파티함. 미국과 일본의 무역분쟁이 일어나자, 모리타가 비공식적으로 맹활약. 데이빗 록펠러와 친구 먹고, 핸리 키신저가 방일 할 때마다 밥 먹음. PE왕 핏 피터슨과 골프 치고.. 뭐 암튼 개쎔.

 

모리타가 생각해보니 미국에서 이제 배울 것이 별로 없음. 일본 전자제품이 더 좋고, 더 잘 만들고, 똑똑한 일본인들은 엔지니어 되는데, 똑똑한 미국인들은 변호사 돼서 말꼬리 잡으면서 돈 벌고 있음.

 

1989년 신타로 이시하라라는 일본의 극우정치인과 에세이집 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이시하라는 태양의 계절이라는 야설 써서 일본에서 제일 권위있는 문학상도 받은 사람 ㅋㅋ

 

이 책에서 모리타와 이시하라가 뭐랬냐?

일본은 그 동안 미국 꼬붕했지만 이제 우리도 미국 주도의 질서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살자.

일본 반도체가 미국보다 지금 5년 앞서 있고, 그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는 추세다.  

미국 ICBM 등 전략무기가 전적으로 일제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고, 일본이 미국에 반도체 안 팔고소련에 팔아먹으면 냉전 결과 뒤바뀐다.

 

이런 경거망동을 떰 ㅋㅋ 미국이 뒤집어진 건 이건 일개 의견이 아니라 팩트였기 때문. 미국은 일본주도의 한일홍콩대만싱 등 아시아 경제 bloc 위기감 고조. 정말 이 추세대로라면 지정학적 질서가 바뀔 수 있다는 위기감 고조. 이것은 안보 위기임.

 

한국 반도체


일본이 경거망동하여 날 뛴 이후는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이야기.

이걸 영어로 읽으니 뽕 돋는다 레알 ㅋㅋ

이병철은 거의 모든 걸 팔아 돈을 버는 남자였음. 야채와 말린 생선 파는 가게부터 시작.

미국은 일본이 못 미더워졌고, 미국과 군사적 동맹국인 한국 정부는 첨단 사업을 하고 싶었고.. 이해 관계가 딱 랑데부.

미국 정부는 1966년 한국의 KIST 설립 원조. 미국의 탑 스쿨 나온 한국 공학자들 늘어나며 인적 인프라 구축.

1980년초 이병철은 일본과 실리콘밸리의 살벌한 DRAM 전쟁을 목격.

1982년 봄 캘리포니아 출장. hp 공장 탐방 다녀오고

"임마들도 Palo Alto 차고에서 시작해서 이리했는데, 야채 생선 가게로 일으킨 우리 삼성이 반도체 못 할꺼 뭐있노라며 자신감.  

근데 이병철도 사이즈가 너무 커 몇 개월 고민함. 한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4억불 투자한다고 약속. 은행도 수백만불 빌려준다고 보증.

19832월 오밤중에 이병철은 삼성전자 사장에게 전화함.
삼성은 반도체 사업을 한다.”

이병철은 이재에 밝은 기업인이고, 그 뒤에 한국정부의 후원이 있었지만, 한국 반도체 산업의 성공에는 실리콘 밸리의 전폭적인 지원(사실 그 뒤의 미국 정부의 지원)이 있었음. 일본 DRAM 점유율을 낮추기 위해 각종 지원해줌. Intel JV해주고 Micron licensing, 실리콘밸리는 한국의 삼성이 일본의 dram점유율을 빼먹는걸 보며 환호

AMD 창업자 Jerry Snaders는 삼성반도체가 일본 반도체를 이겨 먹자 이렇게 말함.

적의 적은 나의 친구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내고 일본은 1990년 일본 곧바로 붕괴. 부동산 폭락하며 잃어버린 decade시작. 69세의 아키오 모리타는 폭락하는 소니의 주가를 보며 망연자실. 일본의 DRAM 기업들은 폭망. 삼성과 미국의 Micron에게 시장점유율 다 빼앗김. 1993년 미국이 DRAM 1위 수복. 1998년엔 한국 기업들이 DRAM 1위 차지. 일본 반도체 회사 점유율은 1980년말 90%에서 199820%로 떡락.

 

이시하라와 모리타의 입방정으로 일본 반도체 업계가 시원하게 날라감. 근데 웃긴건 SONYDRAM 안 했음. Specialized chip이랑 이미징 센서 같은 거 만들고 그러면서 SONY는 안 망하고 그럭저럭(?) 넘어감. 아키오 모리타가 미국에 저건 내수용으로 걍 쓴거고 본심 아니다. 뭐 이딴 소리했는데 이미 늦었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나올 때 즈음 미국이 걸프전 일으킴. 디지털 시대 첫 전쟁임. 토마호크 미사일 막 나오고, 미국이 28개국에 파병 요청했는데 일본이 거절. 일본 개찍힘. 본심이 아니긴 뭐가 본심이 아님? 파병도 안 하면서.

 

 

일단 이게 절반 정도고, 이 뒤는 대만반도체 이야기, 애플의 아이폰, 화웨이, 중국과 패권 전쟁 얘기임. 일단 오늘은 피곤하니 여기까지만 정리하고 뒷부분은.. 나중에 하고 싶을 때 하겠음

우리는 국가자본주의로 가고 있다.

2024.12.13. Russell Napier 인터뷰 발췌 . 지금 봐도 놀랍네.. 번역은 번역기 시킴 ㅋ  Key takeaways  -------------------------------------- 역사적으로 30~40 년마다 통화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