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p
war / Chris Miller
2/3정도 읽었는데 꽤 재밌음. 영어로도 읽을만 하니 사 읽으시거나 번역본 나오면 읽어보시길 추천드림 ㅋㅋ
Intro
세계2차 대전은 철과 알루미늄에 의해서 승패가 갈렸고, 냉전에는 핵무기
경쟁을 했고,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computing power가
결정할 것. Machine learning, missile system, 자율주행, 드론 등등 다 최신 chip 사용
2020년 10월 기준 chip 산업의 매출 1/4이
스마트폰. iPhone 12 배터리 관리, 블루투스, 와이파이, 네트워크, 오디오, 카메라 등등 최첨단 processor chip 필요. Apple은 이중 직접 만드는 chip 없음. 메모리chip은 일본 Kioxia,
Radio frequency chip은 캘리포니아의 Skyworks, 오디오 chip은 오스틴의 Cirrus Logic, 그리고 가장 복잡한 프로세서
아이폰 OS는 직접 만들지 못함. 이거는 TSMC에서 만듬. 애플은 아이폰12를
1억대 이상 팔았는데, 여기 들어가는 A14 processor chip은 118억개의 트랜지스터로 구성. 1961년 세계 최첨단 chip은 4개로 시작.
Chip은 실리콘
밸리의 시작과 끝임. 미국의 도구, 소프트웨어, 고객을 바탕으로 대만, 한국, 일본이
협업. 모두 생산기지는 미군의 기지이기도 함. 1960년
베트남전 패전 이후, 많은 나라들은 미국 국방력에 의한 패권에 의문을 표하기 시작했지만, Chip으로 다시 엮어 내고 화려하게 부활
chip의 시작
트랜지스터가 진공관을 대체할
핵심기술로 부상. 트랜지스터 연구한 사람들이 노벨상 탔는데, 그중
Shockley는 이거로 돈을 벌어보고 싶었음. Bell 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 특허를 2만5천불에 팔아서 언능 사 옴. Shockley가 Palo Alto에 회사 차리고 운영했는데 경영에는
영 재능이 없어서 핵심 엔지니어 8명이 퇴사.
이 8명이 회사를 차렸는데, 이 회사가 그 유명한 반도체 산업의 시작 Fairchild
이 8명이 모두 기라성 같은 사람들로 자람.
Eugene Kleiner
: Kleiner Perkin, 세계 1위 VC 창업
Gordon Moore:
Farichild의 R&D센터장, 무어의 법칙
Bob Noyce: 8명의 리더로
열정과 카리스마 넘치는 성공꾼. 엥간한 반도체 중요한 성공 다 일굼.
Fairchild를 야심차게
창업했는데, 반도체의 개념은 매우 명료한 반면, 현실에서
구현해내기가 드럽게 어려웠음. 수개월 후 Noyce가 Hoerni’s의 planar method 이용해서 실리콘으로 트랜지스터
만들어 내는데 성공. 그럼 이제 이걸 누가 사주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데.
때마침 미국이 아폴로 프로그램
진행하며 NASA가 대량 구매해줌. NASA에 블록딜 ㅋㅋㅋ
팔기 시작하니 직원들 천명으로 늘어나고, 1958년 매출 50만달러에서
2년만에 2천백만달러로 증가.
Texas
Instruments (TI)는 집적회로를 만들고 있었는데, 여기 사장은
Jack Kilby. TI는 집적회로 혁명 이뤄내는 회사.
1965년 Fairchild R&D 센터장 고든 무어의 Electronics
Magazine과 인터뷰에서 “앞으로 최소 10년정도는
반도체의 집적회로의 성능이 24개월마다 2배씩 증가할 것
같다.”라는 무어의 법칙 발표. 이 법칙대라면 10년후인 1975년에는 65K 짜리
트랜지스터를 만들게 되며, 인류 삶 전체를 바꾸게 되고, 노이스와
무어는 이때 이미 PC와 mobile phone의 시대를
꿈꿈. 개인의 반도체 소비가 가능하다는 말.
무어의 법칙으로 컴퓨터의 가격을
하락하는 거임. chip 만들기에서는 인건비가 중요하기 때문에 처음에 인건비가 싼 여자들 데려다가 생산함
1965년 chip의 72% 매출이 국방부에서 구매에서 나옴. 국방부 장관 로버트 맥나라마라가 국방비 예산 감액. Noyce는
Farichild chip 판매가격을 $20에서 원가도 안되는
$2로 1/10로 낮춤. 더
많은 소비자들이 chip을 사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덕분에
미국에서 컴퓨터 판매 10배 증가. 1966년 Burroughs라는 컴퓨터 회사는 2천만개 chip 주문. (아폴로 프로그램의 20배
많은 양)
60년 중반 Fairchild가 첫 해외반도체 공장의 후보자로 홍콩을 검토했는데, 미국
인건비의 1/10수준인 시급 25센트에 불과했기 때문. 근데 다시 보니 대만은 19센트,
말련은 15센트였고 한국은 시급 10센트에 불과했음
ㅠㅠ.
1968년이 되자
컴퓨터 업계가 국방부만큼 chip 소비. Fairchild의
컴퓨터 시장 chip 점유율 80%.
Fairchild는 동부의
갑부들이 소유하고 있었고, 핵심 엔지니어들이 스톡옵션 좀 달라고 뉴욕에 가서 얘기하지만 “너네한테 우리가 주는 월급이 얼만데, 무슨 빨갱이 같은 소릴 하고
있어?”라며 거절. Fairchild 공동창업자였던 Noyce와 Moore가 회사가 스톡옵션 안 주고, X도 모르는 애들이 참견한다고 빡침. 퇴사 인사 카드에 “돈 더 많이 벌고 싶어서 퇴사해유..”라고 쓰고 나감 (I.. WANT…TO.. GET… RICH)
퇴사하고 새로 차림. 이 회사의 이름이 INTegrated Electronics. 즉 INTEL. 전설의 시작
인텔은 2년만에 dynamic random access memory, DRAM을
만들어 냄. 그리고 이것이 컴퓨터가 기억하는 미래라고 말함. 그
전까지 컴퓨터는 자기판에 와이어와 링을 이용해 1과 0을
기록해서 기억. DRAM chip은 실리콘에 기록. 이건
메모리계의 혁명. 게다가 대량생산도 매우 쉬움
DRAM은 Commodity 성격이 있음. 동일 디자인으로 쭉쭉 뽑아내면 여기
저기 범용으로 쓸 수 있음. Computing과 다른 Remembering
chip. 규모의 경제가 중요.
인텔은 일본의 전자계산기 회사
부시콤에 1969년 납품하면서 사업 시작. 당시 전자계산기는
현재의 iPhone에 비견될 정도로 최첨단 개인기기. 계산기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과 재료가 다 최신. 심지어 전자계산기에 쓰이는 플라스틱도 뒷주머니에 넣어도 깨지지
않아야 하는 최첨단 폴리머.
일본 반도체
1962년 일본
총리 하야코 이카다가 프랑스 샤를드골 대통령 엘리제 궁에서 만날 때, 선물로 소니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줌. 1948년 소니 창업자 아키오 모리타는 벨 연구소에서 새로운 트랜지스터가 나왔단 얘기를 듣고, 소비 가전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혜안 발휘.
1953년 미국
출장가서 AT&T를 만나 트랜지스터 라이선스 생산 따냄. 소니는
일본의 저임금을 이용해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들어 창사 이래 첫 상업적 성공을 이뤘고, 아카다 총리가 드골 대통령에게 준건 단순히 라디오가 아니라 일본 경제의 시작.
원래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TI사에서 먼저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비용, 마케팅 등의 이유로 포기. 일본의 소니가 트랜지스터 라디오 상업화에 성공했음. 팔면 4.5%는 Fairchild에게,
3.5%는 TI에게, 2% Western Electric에게
돌아갔음. 미국 반도체 회사들 행복. 미국이 chip을 일본 완성 전자회사에게 팔면, 일본이 저렴한 현지 노동력을
이용해 완성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 모델.
이게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인데, 소니는 처음부터 완성품을 만들어서 팔았음. 뭘 만들어 소비자한테
팔지를 스스로 연구해서 팜. 선진국 제품 OEM하면서 시작한
한국 등 여타 전자강국과는 다른 특이한 케이스. 1979년 그렇게 워크맨이 세상에 나옴. 3억8천5백만대 팔고, 세상을 바꾸고, 음악시장을 바꾸고 일본 가전에 대한 인식을 일거에
바꿈. 그래서 전성기 일본은 세계 반도체 수요의 1/4 차지. 당연 세계 1위고, 처음에는
미국에서 부품을 사와서 일본이 기획하고 만들어 최종제품을 팔았는데, 나중엔 일본이 반도체도 만듬.
1964년 일본은
처음 미국을 개별트랜지스터(discrete transistor) 생산에서 따라잡았으나, 미국 회사들은 이미 훨씬 고도화된 chip 만들며, 격차는 서서히 줄어들다가 1980년이 되면 미국의 반도체는 지옥
같은 10년(hellish decade)를 보냄.
1980년대 일본의
추격이 무서워짐. 미국의 Intel TI와 함께 일본 Toshiba, NEC 다 DRAM 만들게 됨. 일본과 미국 반도체 회사들은 지적 재산권 재판에 얽혀있었고, 그래도
미국 반도체가 일본대비 우위라는 것이 대다수 실리콘 밸리인들의 생각.
단, HP의 Anderson만 Toshiba의
NEC의 추격을 심각하게 바라봤음. 일제가 불량률이 현저히
낮았기 때문. (0.02% vs. 0.09%)
1980년대 가전은
이미 일제가 전미시장 석권. Sony의 아키오 모리타는 자사 엔지니어들에게 최고 품질의 TV, 라디오 만들 뿐 아니라 아예 새로운 제품을 만들라고 항상 쫌.
1980년대 미국
반도체가 일본 반도체에게 밀렸던 이유는 자본조달비용(cost of capital).
볼커가 인플레이션 때려잡으며
금리 21.5%까지 올려서, 일본이 6~7%면 자금 조달하는 걸 실리콘 밸리에서는 18%줘야 함. 그뿐 아니라 일본의 Mitsubishi, Hitachi 같은 반도체
회사는 은행과 결탁해서 장기채 저리로 조달. 일본의 베이비 붐의 높은 저축율도 한 몫.
자신감 붙은 Toshiba, Fujitsu가 치킨게임에 돌입하며 미국 반도체 회사 곤경.
1980년대 일본 반도체 회사는 미국 회사들보다 60%더 투자. 인텔이 64K DRAM 세계최초로 개발했는데 5년만에 점유율 1.7%로 폭락.
1984년 Hitachi 800억엔투자, Toshiba 750억엔, NEC 1억1천만엔 등 세계 반도체 투자비의 45%를 일본회사가 집행했음. 1990년도에는 규모가 더 늘어 세계
반도체 투자비의 50% 차지.
일본이 패전하고 1951년 미국은 평화헌법을 통해 미국이 일본을 지켜주는 대신, 일본은
국방비를 GDP 1% 이상 지출하지 못한다고 못 밖아 놓음. 근데
일본은 국방비로 돈 쓰는 대신 그 돈 가져다 반도체 등에 엄청 투자함. 미국은 경제규모대비 5~10배 국방비 지출하면서 소련과 냉전하고 있었음.
미국이 보니깐. 미국 돈으로 일본 지켜주는데, 일본은 지들 국방비 할 돈으로 반도체
치킨게임하고 앉았음. 일본이 치킨 게임으로 미국 디램 업체 고사시키고 있으니 미국이 개빡침.
일본은 관세를 만들어 미국반도체
수입할 때 관세 세게 때리고, 자국 반도체 쓰도록 유도. 1986년에
반도체 관세 없앰.
1980년말 일본은
세계 lithography 장비 시장 70% 점유. 미국이 21%.
1987년 미국은
국방부와 반도체 기업이 참여하는 Sematech이라는 컨소시움 만듬.
(chip메이커, 국방부 50:50 출자). 우리도 일본처럼 정부와 기업이 혼연일체로 반도체 업계에서 뭐 해보자. 일단
lithography에서 일본의 점유율이 너무 높으니 이거 대항할 회사 키워주자. 그렇게 Sematech이 미국 Lithograhpy
업체인 GCA에 출자한 돈의 절반 몰아 줌. 일본의
Nikon과 Canon, 네덜란드의 ASML보다 GCA가 훨씬 뒤처졌던 상황. 미국 반도체의 레전드 Noyce 데려와서 총 지휘. 하지만 고객들은 이미 Nikon, Canon, ASML에 적응되어서
바꾸고 싶지 않아 함. 망함. 1988-1992년 3천만불 잃음. Sematech에서 7천만불
쏴줬는데 공중분해 ㅋㅋ
Noyce는 Fairchild, Intel 창업, Dram 상업화 등 성공했으나, Lithology앞에서 좌절.
미국 더 약오름 더 빡침.
SONY 창업자
아키오 모리타는 거물 of 거물이 됨. 월가와 워싱턴의 거물들과
인적 네트워크 있고, 뉴욕에서 사교계 거물 모아 놓고 일본식 티타임 갖음. 뉴욕 5번가와 82번가에
아파트 있었고, 파티함. 미국과 일본의 무역분쟁이 일어나자, 모리타가 비공식적으로 맹활약. 데이빗 록펠러와 친구 먹고, 핸리 키신저가 방일 할 때마다 밥 먹음. PE왕 핏 피터슨과 골프
치고.. 뭐 암튼 개쎔.
모리타가 생각해보니 미국에서
이제 배울 것이 별로 없음. 일본 전자제품이 더 좋고, 더
잘 만들고, 똑똑한 일본인들은 엔지니어 되는데, 똑똑한 미국인들은
변호사 돼서 말꼬리 잡으면서 돈 벌고 있음.
1989년 신타로
이시하라라는 일본의 극우정치인과 에세이집 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이시하라는 태양의 계절이라는 야설 써서 일본에서 제일 권위있는 문학상도 받은 사람 ㅋㅋ
이 책에서 모리타와 이시하라가
뭐랬냐?
일본은 그 동안 미국 꼬붕했지만
이제 우리도 미국 주도의 질서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살자.
일본 반도체가 미국보다 지금
5년 앞서 있고, 그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는 추세다.
미국 ICBM 등 전략무기가 전적으로 일제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고, 일본이
미국에 반도체 안 팔고소련에 팔아먹으면 냉전 결과 뒤바뀐다.
이런 경거망동을 떰 ㅋㅋ 미국이
뒤집어진 건 이건 일개 의견이 아니라 팩트였기 때문. 미국은 일본주도의 한일홍콩대만싱 등 아시아 경제 bloc 위기감 고조. 정말 이 추세대로라면 지정학적 질서가 바뀔
수 있다는 위기감 고조. 이것은 안보 위기임.
한국 반도체
일본이 경거망동하여 날 뛴 이후는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이야기.
이걸 영어로 읽으니 뽕 돋는다
레알 ㅋㅋ
이병철은 거의 모든 걸 팔아
돈을 버는 남자였음. 야채와 말린 생선 파는 가게부터 시작.
미국은 일본이 못 미더워졌고, 미국과 군사적 동맹국인 한국 정부는 첨단 사업을 하고 싶었고.. 이해
관계가 딱 랑데부.
미국 정부는 1966년 한국의 KIST 설립 원조.
미국의 탑 스쿨 나온 한국 공학자들 늘어나며 인적 인프라 구축.
1980년초 이병철은
일본과 실리콘밸리의 살벌한 DRAM 전쟁을 목격.
1982년 봄
캘리포니아 출장. hp 공장 탐방 다녀오고
"임마들도
Palo Alto 차고에서 시작해서 이리했는데, 야채 생선
가게로 일으킨 우리 삼성이 반도체 못 할꺼 뭐있노라며 자신감.
근데 이병철도 사이즈가 너무
커 몇 개월 고민함. 한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4억불 투자한다고
약속. 은행도 수백만불 빌려준다고 보증.
1983년 2월 오밤중에 이병철은 삼성전자 사장에게 전화함.
“삼성은 반도체 사업을 한다.”
이병철은 이재에 밝은 기업인이고, 그 뒤에 한국정부의 후원이 있었지만, 한국 반도체 산업의 성공에는
실리콘 밸리의 전폭적인 지원(사실 그 뒤의 미국 정부의 지원)이
있었음. 일본 DRAM 점유율을 낮추기 위해 각종 지원해줌. Intel이 JV해주고
Micron이 licensing, 실리콘밸리는 한국의 삼성이 일본의 dram점유율을 빼먹는걸 보며 환호
AMD 창업자
Jerry Snaders는 삼성반도체가 일본 반도체를 이겨 먹자 이렇게 말함.
“적의 적은
나의 친구”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내고 일본은 1990년 일본 곧바로
붕괴. 부동산 폭락하며 잃어버린 decade시작. 69세의 아키오 모리타는 폭락하는 소니의 주가를 보며 망연자실. 일본의
DRAM 기업들은 폭망. 삼성과 미국의 Micron에게 시장점유율 다 빼앗김. 1993년 미국이 DRAM 1위 수복. 1998년엔 한국 기업들이 DRAM 1위 차지. 일본 반도체 회사 점유율은 1980년말 90%에서 1998년
20%로 떡락.
이시하라와 모리타의 입방정으로
일본 반도체 업계가 시원하게 날라감. 근데 웃긴건 SONY는
DRAM 안 했음. Specialized chip이랑 이미징
센서 같은 거 만들고 그러면서 SONY는 안 망하고 그럭저럭(?) 넘어감. 아키오 모리타가 미국에 저건 내수용으로 걍 쓴거고 본심 아니다. 뭐
이딴 소리했는데 이미 늦었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나올 때 즈음 미국이 걸프전 일으킴. 디지털
시대 첫 전쟁임. 토마호크 미사일 막 나오고, 미국이 28개국에 파병 요청했는데 일본이 거절. 일본 개찍힘. 본심이 아니긴 뭐가 본심이 아님? 파병도 안 하면서.
일단 이게 절반 정도고, 이 뒤는 대만반도체 이야기, 애플의 아이폰, 화웨이, 중국과 패권 전쟁 얘기임.
일단 오늘은 피곤하니 여기까지만 정리하고 뒷부분은.. 나중에 하고 싶을 때 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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