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의역은 많고, 오역도
많으니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는 역자가 단 주석. 하이라이트는 역자가 흥미있게 읽은 부분이고, 꼭 동의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하거나 웃겨서 한 경우가 많다.
-----
핸리 키신저는 싱가폴의 국부 리콴유를 “지도자의 능력과 국력의 상관관계에서
역사적인 예외 중 한명.”라고 썼다. 키신저의 상관 닉슨은
한술 더 떴다. 그는 리콴유가 다른 나라 다른 시기에 태어났다면 처칠,
디즈레일리, 글래드스톤급*) 지명도를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부터 리콴유에게는 작은 무대의
거대한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의 무대는 그렇게 작지 않다. 싱가폴의 1인당 GNP는
싱가폴의 점령국이었던 영국보다 높다. 싱가폴은 세계에서 가장 혼잡한 부두, 3번째로 큰 정유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글로벌 제조, 서비스 산업의 중심지다. 싱가폴은
1세대만에 빈국에서 부국으로 탈바꿈했다. 1965년 싱가폴은 칠레, 아르헨티나 멕시코와 1인당 GNP가
비슷했지만, 지금은 그들보다 4~5배가 높다.
*)대영제국 전성기를 이끌었던 영국 총리들
리콴유는 정치적으로는 싱가폴을 매우 엄혹하게 지배하면서, 경제적으로는
기적적인 변화를 일구었다. 싱가폴 정부는 “연성” 권위주의 체제라고 곧잘 묘사되지만, 사실 그렇게 부드럽게 운영되지는
않았다. 그는 싱가폴이 독립하던 해인 1959년부터 그가
후계자에게 권좌를 물려준 1990년까지 총리였다. (싱가폴은 1963년까지는 말레이시아 연방의 일부였다가 1965년 연방에서 쫓겨났다.) 그는 지금도 현직 원로장관으로서 싱가폴에 막강한 영향과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가 은퇴한 이래로 리콴유는 특유의 싸가지 없지만 솔직한 화법으로 세계적 ‘현자’가 되는 것을 2번째 직업으로 삼았다. 그가 줄곧 염두에 두는 것은 미국식 민주주의와 그 위험성이다. 그는
베이징, 하노이, 마닐라 등 동아시아의 여러 수도를 순회하며
정치적 안정과 통제를 유지하며 경제적 성장을 이루는비결을 설파하고 있다. 이 나라들의 정치엘리트들은
그를 열성적으로 배우고 싶어 한다.
싱가폴인들은
영국이 지었던 건물을 여전히 쓴다. 때문에 영국 식민지의 통치자들은 그들의 총독부를 가리 위한 거대한
기념물을 짓는 당혹스러운 일은 피할 수 있었다.*) 대통령, 총리, 원로장관의 집무실이 여기에 있다. 전 총독부는 빛나는 하얀색 건물로, 잘 관리된 잔디로 둘러 쌓여있었다. 인테리어는 모던했고, 가죽소파와 밝은 나무로 꾸몄다. 분위기는 고요했다. 나는 큰 대기실에서 “SM”(원로장관 Senior Minister)를 기다렸다. 여기선 모두 리콴유를 SM이라고 부른다. 나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널찍하고 간결한 가구가 있는 그의 집무실에서 중간체구의 SM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예전에는 굉장히 다부진 체격이었지만 나이를 먹어 약간 왜소해진 상태였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70대로 보이지 않았다.
*)과거의 무슨 일을 조롱하는 것 같은데, 뭔진 모르겠음
리콴유는
내가 그동안 만났던 여느 정치인과 달랐다. 웃음도, 농담도, 친밀감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는 무표정하지만 강한 눈빛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는 악수를 청한 뒤 진한 청색 가죽 쇼파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이미 그의 언론 비서관과 이야기할 때 이 의자에 앉아본 적이 있었다.) 30초간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본격적인 인터뷰를 위한 가벼운 대화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녹음기의 버튼을 켰다.
이하 FZ(Fareed Zakaria): Interviewer LKY(Lee
Kuan Yew): Interviewee
FZ: 냉전이 끝나고 많은 미국인들이 굳건한 친미파라고 생각했던 동아시아의
엘리트들이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시스템을 점점 심하게 비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당신은 미국
시스템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LKY: 미국 시스템의 문제점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니다. 나의 일은 미국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사회에 그들의 시스템을 무차별적으로 강요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FZ: 그렇다면 당신은 미국이 다른 나라의 모델이 아니라고 보는가?
KLY: 동아시아인으로서 나는 미국의 매력적인 부분과 매력적이지 않은
부분 모두를 본다. 예를 들자면, 나는 미국인들이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나, 종교 등에 상관 없이 자유로움, 편안함, 열린 관계 추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공산주의 시스템과 달리
미국인에게 논쟁이 허락된다는 점을, 나는 언제나 존경한다. 이를테면
사회에 어떤 것이 좋고 나쁜 것인가; 공무원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같은 것들 말이다. 또한 공산주의에서는 비밀과 테러가 그들의 일부인 반면, 미국인들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전체 시스템을 놓고 보자면, 나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들도
발견한다. 총, 마약, 범죄, 강도, 공중도덕의 붕괴 같은 것들은 시민사회에 균열을 준다. 개인의 기쁨을 위해 어떤 것이 바람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권리를 확장시키는 것은 결국 사회의 비용으로 돌아온다. 동양사회의 핵심 목표는 모두가 최대한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질서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 자유는 질서 있는 국가에서만 가능하고, 무정부상태나
자연에서는 불가능하다.
미국과 싱가폴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를 들겠다. 미국은 마약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다.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미국은 세계의
마약 단속기구와 공조하여 공급을 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헬리콥터, 고엽제 등에 돈을 쓰고 있다. 그리고 미국을 짜증나게 할 때면 파나마
대통령을 붙잡아와 플로리다 법정에 세운다. 싱가폴은 그런 선택지가 없다. 우리는 미얀마에 가서 그들의 국왕을 붙잡아 올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싱가폴
국경을 넘는 수상한 사람은 그 누구라도 세관직원이나 경찰이 소변 검사 등 필요한 여러 검사를 할 수 있는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만일 샘플에서 마약성분이 검출되면 즉각 응당한 조치를 취한다. 미국에서
그런 식으로 했다간 당신은 인권침해로 바로 고소를 당한다.
나는 콜린 파월이 미군 최고 인사담당자였을 때 한 얘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미군은
우리의 방식을 따른다는 것이다. 신병이 입대하면 그는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나는 이 방식이 마약을 다루는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개인의 인권은 신성불가침
영역이라는 생각이 도그마가 되었다. 그러면서 미국이 자국 군대를 파병해 다른 나라 대통령을 잡아와 플로리다
감옥에 쳐 넣는 것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든
이런 방식이 미국의 마약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반면 싱가폴의 방식은 우리가 문제를
해소하지는 못할지 언정 현격히 줄어줄 수 있다.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FZ: 25년 전에는 당신이 미국을
(지금보다) 더 존경했다고 말해도 될까? 당신의
견해 중에 무엇이 틀렸나?
LKY: 맞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는 사회 도덕의 붕괴가 개인의 책임의 축소와 관계가 깊다고 감히 말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주의자들은 모든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으면,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살 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도 회의적이다. 인간 본성의 기초는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어떤 도덕 관념이 필요하다. 세상엔
악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악은 사회에 의해서 만들어진 희생자 같은 것이 아니다. 세상엔 악인이 있으며, 그들은 악한 일을 행한다. 당신은 그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멈추게 해야 한다. 서구인들은
좋은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사회의 윤리적 기저들을 모르쇠해왔다. 동양문화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FZ: 그러한 문화의 근본적인 전환은 바꿀 수 없는가?
LKY: 아니다. 진자
운동 같은 것이다.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돌아온다. 이미
미국에서는 실패한 사회 정책들에 대한 역풍이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노상방뇨를 하고, 강도가 있다.
FZ: 당신은 한 시스템이 다른 사회에서 잘 작동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른 성공 가능한 정치, 사회적 발전 모델이 있는가? “아시아 모델”이 있는가?
LKY: 아시아 모델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시아 사회는 서구사회와 다르다. 아시아 사회는 정부와 사회의
개념자체가 서구와 다르다. 여기서 아시아는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을 뜻한다. 중국과
인도문화가 섞인 동남아는 논외다. 동양사회에서 개인은 가족의 맥락 안에서 존재한다. 개인은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가족은 연장된 가족의 일부이며, 친구나 더 넓게 사회도 그렇다. 정부는 가족이 가장 잘 제공할 수
있는 것을 제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서구에서는, 특히 세계 2차대전 이후에, 정부는
현대사회에서 가족에 의해 충족되지 않던 것들을 충족해주면서 성공해왔다. 이러한 접근법은 정부가 아버지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게 하며 많은 싱글맘과 같은 대안 가족을 양산했다. 이건 나 같은 동아시아인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급진적인 헉슬리(Huyxleyan)적 견해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런 (사회적) 실험이
염려가 된다. 나는 그 결과가 어떨지 확신하지 못한다. 아니
나는 서구에서 발생하고 있는 결과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신은 나와 같은 견해가 동아시아서 꽤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동아시아에 싱글맘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자들을 교육시켜 금전적으로 독립시켰을 때 그들이 더 이상 불행한 결혼을 참지 않으면서 서구와 같은 사회문제를 당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검증된 가족단위의 규범들을 포기할 때 심각한 혼란을 초래한다.
그 규범들은 사회를 구성하는 벽돌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중국 격언이 있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수신은
자신을 수련한다는 말이고, 제가는 가족을 돌본다는 뜻이다. 제국은
나라를 다스리고, 평천하는 하늘아래 모든 것이 평화롭다는 말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이 신념 하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 손녀의 이름을 ‘수제’다. 내 아들이 수신과 제가의 앞글자를 떼어 지었다. 이것이 우리 문명의 기본 개념이다. 정부는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개념은 계속 유지된다. 우리는 자립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서구는 정반대다. 정부는 국민에게 말한다. ‘나에게 위임하라, 그럼 내가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FZ: 그럼 미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LKY: 내가 만약 미국인이라면 난 뭘 할 것이냐고? 첫째, 사회의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총, 마약, 폭력범죄는
모두 규율로 다스려야 한다. 그 다음 학교다. 학교에서 범죄를 저지른 학생은
계속 교육을 받으면 안 된다. 잘못을 고치는 것이 먼저다. 그런 다음에야 학생은 기술, 지능, 지식 등 사람을 생산적으로 만드는 전인적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나는
개인, 가족이라는 맥락 안에서의 개인, 친구, 사회와 같은 기초부터 시작하겠다. 그러나 서구인들은 위에서부터 뭔가를
고치려고 한다. 마법의 주문이나 그랜드 플랜처럼 마술지팡이를 흔들면 모든 것이 정상이 될 거라 믿는다. 흥미로운 이론이지만 입증 된 바 없다.
FZ: 당신은 정부가 심각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하지만 당신은 미국인들보다도 정부가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기술발전을 도모할 능력이 있다고 확신한다. 이건 모순적이지 않은가?
LKY: 아니다. 우리는 싱가폴의 기본에 중점을
둔다. 우리는 개인과 그 가족의 야망을 우리 계획과발 맞추게 하며, 가족을
이용해 경제성장을 추진하다. 우리는 아이들을 교육을 통해 계발하려고 노력했다. 정부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고 그들의 자신을 표현하는 환경을 조성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이 인생에서 하는 일이 그들의 경제적 성공이나 실패를 결정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가족을 위한 근면에 믿음과 학문과 배움을 존중하는
문화적 배경이 있었다는 점에서 운이 좋았다.
물론 우리의 성공에는 다른 이유들도 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하는 동안 어떤 변화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우리는 서구사회와 일본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위치와 가야 할 길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자신에게
말했다. “서두르자. 우리가 더 빨리 목표에 도달 할 수
있는지 해보자.” 그러나 우리는 곧 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머지 않은 미래에 일본을 추월한다. 그럼 다음은 어디인가? 어떻게
우리가 그곳을 가야 하는가? 우리는 그 다음을 알지 못하며, 이건
새로운 상황이다.
FZ: 혹자들은 아시아 모델이 너무 경직되어 있어서 잘 변화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학자 올슨은 국가의 쇠락은 대부분 기본적으로 경직에서 야기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경직은 회사, 노동, 자본, 국가 등의 기득권의 경직을 말한다. 미국식 시스템은 매우 유연하고, 자유방임적이므로 정부주도의 경제정책이나 유교적 가치 시스템에 비해 빠른 변화에 적응해 나갈 수 있다.
LKY: 그건 낙관적이고 매력적인 인생 철학이다. 나도 그게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당신이 지난 천년간의 사회들을
유심히 본다면, 어떤 기본적인 패턴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필그림
파더스*)에서 시작한 미국 문명은 낙관주의 정부의 성장이었다. 중국의
역사는 사회를 갈고 닦은 왕조들의 흥망성쇄였다. 그리고 모든 부침을 통해 가족, 연장된 가족, 씨족은 개인에게 생존의 보루를 제공했다. 문명이 붕괴되고, 왕조는 쇠퇴했지만, 이 생존의 보루는 문명을 다음 단계로 진행되게 만들었다.
*)메이플라워를 타고 초창기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인들
누구도
진정으로 정부가 모든 것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정부조차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 지진이나 태풍 등의 극단적인 위기상황에서 당신은 인간관계에 의지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인용한 이론은 – 즉, 정부가 스스로 새로운 형태로
재발명 될 수 있다는 – 역사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과 인간관계는 그 구성원을 생존시킬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이는 지난 수 천년간 매우 많은 다른 상황에서
검증되었다.
성공의 문화
FZ: 과거 국가 경제 성공의 주요 요소는 혁신과 실험의 문화였다. 큰 부를 이루고 성장하여 패권의 중심으로 성장한 베니스, 네덜란드, 영국, 미국은 모두 지적 자유의 환경이 있었고, 그 안에서 새로운 생각, 기술, 방법, 물건이 등장할 수 있었다. 일단 인권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과연 생산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LKY: 지적으로는 매우 합당한 결론으로 들린다. 그러나 나는 세상사가 그런 방식으로 일어나는지 의문이다. 일본을
예로 들어보면 그들이 꼭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내는데 불리한 환경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만약 정부가
당신의 이론을 알고 있고, 새로운 부분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면, 정부는
현재의 틀을 깨고 트렌드에 반응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동아시아인들은 엄격한 규율의 전통을 공유한다. 선생님을 공경하고, 선생님 뒤에서 얘기하지 않고, 배움을 숭상하고,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을 연구하는 것들 말이다. 어떤 경우에도 즉각적인 전자 커뮤니케이션의 세계에서는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다.
새로운 것이 나오면 빨리 전파된다.
FZ: 당신은 세계은행이 동아시아의 경제적 성공에 대한 리포트에 동의하는가? 세계은행의 보고서는 저축의 독려, 투자, 낮은 인플레이션 유지, 고등교육 제공 등 기초에 충실한 국가가 성공했다고
해석한다. 정부의 산업 정책이나 육성 분야 선택과 같은 것들은 이 예외적인 성공을 한 나라들의 성공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LKY: 나는 세계은행이 매우 어려운 업무를 했다고 생각한다. 세계은행은 매우 복잡한 일련의 상황을 기술해야 했다. 하지만 보고서가
거의 다루지 않은 문화적 요소는 사실 훨씬 자세히 다뤄져야 했다. 이는 연구를 훨씬 복잡하게 만들고
덜 보편적인 함의를 갖겠지만, 그것이 더 정확정확 했을 것이다. 이를
테면 필리핀과 대만의 차이를 밝힐 수 있었을 것이다.
FZ: 만일 문화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다른 문화의 나라들이, 기본에 충실했던 동아시아 방식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당신은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그들의 경제를 자유화하기를 희망하지 않는가?
LKY: 기초를 충실히 하는 것이 도움은 될 거다. 그러나 이 사회들은 동아시아가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성공할 수 없다. 동아시아와
같은 추진력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학습, 근면, 번영, 미래의 성취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이연하는 문화가 없는
나라에 산다면, 경제성장을 더딜 것이다.
세계은행 보고서의 결론은 미국 문화, 좀더 확장하면 국제 기구의
문화의 발로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보편화될 수 있는 방식을 찾는다. 나는
이런 것들이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만족스럽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둥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똑같다는 둥의 희망적인 전제를 깐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람들의
특징은 수천년간 다른 지역에서 별도로 형성되었다. 유전과 역사는 상호작용한다. 미국의 원주민 인디언은 동아시아의 몽골인,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과 유전적으로 같다.
하지만 베링 해협이 녹으면서 한 그룹은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육지의 다리 없이 그들은
완전히 고립되어 수천년을 보냈다. 반면 동아시아에서 다른 사람들은 서로 침략도하고, 이리 저리 이동하면서 지냈다. 두 그룹은 두개골의 모양 같은 것이
닮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많은 두 그룹간 신경의 발달이나 그들의 문화적 가치 등에서는 많은 차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신은 이런 종류의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 왜냐면 이런
연구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으며, 이런 연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사회적 자살행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회 정책에 대한 실망을 야기한다. 미국이 위대한 열정과 기대를 갖고, 시시한 정책만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은 엄혹한 현실을 직시할 의지가 없다. 하지만 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 하기가 싫다.
FZ: 문화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는 변한다. 아시아 모델은 과도기적
현상을 설명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서구나라들은 18~19세기 자본주의자들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으로 제한되어있는 과도기를 이미지 나지 않았는가? 당시의 서구 정치 엘리트들은 당신과 똑같은 우려를 표명했다. ‘너무
많은’ 민주주의와 ‘너무 많은’ 개인의 권리는 사회의 안정을 해친다고. 그러나 이 나라들은 모두
현대화 되었으며, 경제적 성장도 사회의 모든 분야로 확산되었다.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동아시아들도 중산층이 증가함에 따라 그들의 욕구도 변할 수 있지 않는가?
LKY: 동아시아에 급진적인 변화가 있다. 우리는 1~2세대 전만 해도 농경사회의 일원이었다. 서구에서 200년 이상 걸렸던 일들이 여기서는 50년정도의 기간 동안 일어났다. 매우 짧은 기간 동안 모든 것을
벼락치기 했다. 그래서 많은 부작용이 있다. 한국, 태국, 홍콩, 싱가폴과
같이 급성장한 나라를 살펴보면, 이들에겐 한가지 특이한 증상이 있다.
종교의 부상이다. 한국인들은 기독교인 비율이 높다. 내가 알기로 25%정도 된다. 이 나라는 기독교 국가에게 1번도 점령당한 적이 없다. 제사나 샤머니즘 같은 오랜 관습이나 종교는
한국인들을 더 이상 만족시키지 못한다.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고,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가 하는 것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고차원적인 설명이 필요했다. 이는 한국인들이
극심한 스트레스 받는 사회와 기간과 관련이 있다. 일본에서 스트레스가 심화된 시기에는
새로운 종파가 고개를 들고, 새로운 종교가 번성했다. 대만, 홍콩, 싱가폴도 그렇다. 많은
유교사원, 도교사원, 기독교 종파들이 생겼다.
우리는
모두 급격한 변화의 중심에 있었으며 동시에 우리는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우리는 과거를 지나오면서 우리의
옛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근원적 불안감에 시달렸다. 일본인들은 이 문제를
확장으로 해결했다. 일본은 산업화된 동시에 인간관계는 일본식으로 유지했다. 그들은 산업화하면서 그들의 봉건적 가치를 유지했다. 대만인과 한국인들도
같은 방식을 노력한다. 만일 이 사회들이 그들의 핵심 가치를 보존한다면, 전환기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이 문제는 미국인들이
그들을 위해 해결해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생각을 수용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서구화된 것이다. 기술과 과학의 필연이 그들이 가꿔온 인생
방식을 바꿀 수 없다는 관점에서 확실히 서구화 된 것이다.
FZ: 하지만 경제적 과학적 발전이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바꿔놓지
않을까?
KLY: 이건 사고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 체계에 대한 문제다. 내가 일화를 하나 들어보겠다. 말레이시아의 많은 중국인들은 1960년대 말레이시아에서 인종소요사태가 터지자 호주와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그들은 그들의 자식들에게 영어로 교육하는 더 나은 교육을 위해서 이민을 택했다. 왜냐면
당시 말레이시아는 공용어를 영어에서 말레이어로 바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랐고, 10대 후반이 되자 집을 떠났다. 그러자 그들의 부모들은 공허함을
느꼈다. 그들은 영어로 현대식 교육을 주었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의 아이들을 함께 잃었다. 이건 굉장히 냉혹한 경험이다. 다소 덜 드라마틱하지만 싱가폴에서도
현재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FZ: 그러나 이 아이들은 당신의 세대와 전혀 다른 영향을 받고 자랐다. 당신은 지식, 생활 방식, 문화가
급속히 확산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와 개인의 권리 또한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LKY: 말장난 같은 단계로 논쟁을 이끌지 말자. 중국의 정부 시스템은 바뀔 것이다. 한국, 대만, 베트남에서도 바뀔 것이다.
싱가폴은 바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독일 시스템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냐? 우리가 느끼기에 편안한 정부의 모습이다. 왜냐면 그게 우리의 욕구와
맞다. 억압하거나 우리의 기회를 극대화하는 정부가 아니다. 만약
사람에 따라 1인 1표,
1인 2표를 주는 것이 작동한다면 그것이 맞을 수 있다.
나는 1인1표제가 최선이라는 것에 지적으로 설득되지
않는다. 우리는 영국이 그런 유산을 우리에게 물려주고 떠났기 때문에 그것을 시도해보았고 바꿔야 할 별다른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가정이 있는 40세 이상의 남성에게 2표를 준다면, 그는 그의 아이들을 위해, 변덕스러운 30대 남성보다 더 신중하게 투표할 것이다. 동시에 65세가 넘으면 다시 1표만
준다. 40~60세가 투표에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이런 조정은 매우 어렵긴 할 것이다. 물론 우리가 아직 그것이 아직 필요하다는 얘긴 아니다. 만약 그런 방식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할 거란 말이다.
FZ: 다문화 사회에서 변화는 종종 위협이 되기도 한다. 당신은 다문화 국가에서 성공도 실패도 해봤다. 말레이시아는 중국인의
도시국가가 연방의 일부가 되는 것을 불편해했고, 결국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축출시켰다. 그러나 싱가폴은 독립하여 평화적인 다문화 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다문화 혹은 다종교 국가가 융화될 수 있는 비법이 있는가?
LKY: 각 국가는 각기 다른 문제를 직면하므로 내가 일반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가 조심스럽다. 나의 경험으로는 ‘천천히 빠르게’라고 말하고 싶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인종, 문화, 종교, 언어적
정체성을 잃는 것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의 국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당신은 공통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 당신이 그걸 압박한다면 문제가 된다. 만일 당신이 점진적으로 그러나
꾸준히 한다면, 여러 이벤트들의 겉도는 것이 아니라 통합될 것이다. 만일
내가 싱가폴인들에게 영어사용을 강요했더라면, 나는 전방위적인 저항을 받았을 것이다. 만일 내가 중국어 사용을 강요했더라면, 즉각적인 저항과 재앙에 직면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부모들에게 그들의 모국어로 영어를 선택할 것을 제안했다.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과 시장의 보상에 의해 30년간 영어가 제1언어가
되었다. 우리는 이미 중국어에서 영어로 이뤄진 하나의 세계로 전환했다.
만일 이것이 30년간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점진적으로 추진되지 않고, 5~10년간 밀어 붙였다면 그건 재앙이었을 것이다.
FZ: 그건 참 각자 방식대로 세상을 살자는 말처럼 들린다. 미국과 프랑스 등 많은 서구 국가들이 다양한 사람들을 각각 영어와 프랑스어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사회에 동화시키려고
노력해왔다. 당신도 알다시피, 오늘날 이런 시도는 매우 의문시되고
있다. 많은 미국과 프랑스의 소수집단들이 “다문화주의”를 주장하며, 국가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고 구분되어 공존할 것을 말한다. 당신이 싱가폴에서 이런 움직임을 본다면 어떻겠는가?
LKY: 한 국가를 이루는데 있어 너무나 많은 구분 요소가 있을 수는
없다. 그건 상호 변화를 어렵게 한다. 만일 완벽한 구분을 원한다면, 그 나라에 살아서는 안 된다. 물론 그냥 냅두는
것이 더 나은 환경도 있다. 이를 테면 싱가폴의 모든 인종들은 구직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제한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무슬림을 약간 다른 범주로 놓는다. 왜냐면
그들은 먹는 것에 있어서 극단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에 있어서는 일치와 다소 다름 사이에서
적절한 중도를 찾아야 한다. 나는 일정부분은 근본적인 의문 자체로 남겨두면서 시간에 맡기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
FZ: 그렇다면 당신은 프랑스가 그들의 소수 무슬림 국민들에게 “천천히 해라, 이 사람들을 강하게 재촉하지는 마라.”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인가?
LKY: 나는 그런 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프랑스는 오랜 시간동안 알제리를 다스렸고, 그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내 접근법은 이렇다. 만일 어떤 무슬림
소녀가 히잡을 쓰고 학교를 가야 된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이 낯설음을 참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녀가 세관이나 출입국사무소에서 근무한다면, 그래서
다른 사람이 그녀를 직원으로 알아봐야하기 때문에 그녀는 (히잡 대신)
유니폼을 업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싱가폴이 해온 방식이다.
FZ: 주제를 좀 바꿔서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해보겠다.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동아시아)은 서구사회가 400년동한 경험한 성장을 경험했다. 서구는 지난 400년간 세계의 대부분의 부만 창출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전쟁도 일으켰다. 오늘날 동아시아의 나라는 거대하한 정체되지
않은 성장의 중심지다. 새로 부상하는 몇몇 나라들은 서로 다른 정치 시스템, 역사적 원한, 영토 분쟁, 군사력의
불균형을 안고 서로 인접해 있다. 혹시 당신은 이런 것들을 볼 때 유럽의 과거가 아시아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보는가?
LKY: 아니다. 그건
지나친 단순화다. 이건 나의 추측이지만, 내가 동아시아에서
긴 기간 동안 경제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동아시아의 정부들은 잔인하고 파괴적인 전쟁에 대해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다. 한국과 같은 전면전까지는 아니더라도, 말레이시아의 정글,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다 국지전을 겪었다. 우리는 갈등에 엮일수록
더 가난해지고 황폐해지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가보라. 그런 세상이 그들을 막 지나갔다. 이 교훈은 매우 오래 살아남을
것이고, 최소한 우리 세대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럴 것이다.
FZ: 세계 시스템의 변화 가운데 가장 불안정한 변화는 새로운 강대국의
등장이다. 중국의 부상이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가져올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중국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동아시아의 질서를 불안정하게 하는가?
LKY: 나는 단지 동아시아 질서의 관점에서만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문제는 세계가 중국이 국제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는 수준에서 중국만한 사이즈를 감당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인가 이다. 앞으로 20~30년간은 주요 강대국들은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는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작은 나라 사이의 분쟁은 그들을 파괴할
뿐 전체 세계를 파괴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강대국간의 큰 갈등은 세계를 파괴할 수 있다. 너무 파괴적이어서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지난 전쟁의 끝에서 우리가 상상한 것은 UN이다. 5개의 상임이사국이 국제관계를 법과 질서로 서서히 유지해나가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스탈린과 냉전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다. 지금은 새로운 단계이다. 강대국들은 미국과 서유럽, 그리고 일본, 중국 그리고 러시아는 향후 20~30년 후에 그들사이의 균형을 찾아야만
한다. 나는 UN을 통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UN은 이미 48년의 경험이 있다.
물론 그건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나 대안이 있는가? 5 강대국이
나머지 인류를 위해 콘소시움 같은 것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들은 도덕적 권위나 법적 구속력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영향에 따라 세계를 5개의
구획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다자간의 질서와 지배구조를 만들 수 있어야만 한다. 물론 동남아나 남미의 작은 국가들끼리의 사소한 갈등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건 별로 큰 문제는 아니다. 만약 서남아시아의 핵보유국 파키스탄과 인도가 갈등을 일으킨다면 그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런 관점에서 향후 중국이 경제적 군사적 힘을 길렀을 때 그 위치가 어디가 될 것인가를 가늠해 보아야 한다.
FZ: 중국은 안정적인가? 중국의
성장은 안정적인가? 중국의 경제 개혁과 덩샤오핑의 정치적 통제가 그의 죽음 이후에도 안정적일까?
LKY: 현재 중국의 체제는 중국에서 고안할 수 있는 어떤 대안보다도
더 안정적이다. 천안문에 있었던 학생들이 정부를 구성했다고
가정해보자. 천안문에 있었던 학생들은 프랑스나 미국식 정부를 추구했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 그때부터 지금까지 싸우고 있을 것이다. 지금 중국인들은 어떤 정부를 갖고 있는가? 어떤 부분은 소련보다도 못할 것이다. 중국은 거대하고 이질적인 나라다. 강력한 중앙 집권 외에는 대안이 없다.
KZ: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빠르고 불평등한 성장은 중국을 분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LKY: 우선 경제는 중국 어디에서나 성장한다. 가장 내륙인 쓰촨에서도 성장한다. 성장률의 차이는 필연적이다. 캘리포니아와 러스트벨트도 발전과 불황의 차이가 있다. 중국은 그
광대한 크기 때문에 발생하는 까다로운 문제들이 있다. 스탈린 시대에 엉망진창으로 깔았던 소련식 시스템, 낙후된 인프라.. 이런 모든 악조건을 고려할 때 나는 중국인이 지금까지
해온 것에 전율한다.
KZ: 다른 아시아의 강대국은 어떤가? 만일 일본이 현재의 궤도를 지속할 수 있다면, 세계는 일본에게 정치적
군사적 책임과 힘을 부여해야 해야하지 않을까?
LKY: 아니다. 현재
일본의 정치세대들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 전후 세대가 권력을 잡는 시기가 도래하면 모르겠지만, 나는 급격한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이 현재처럼 미국에
안보를 위임하고 미국의 정책을 따르며 경제와 내치에 집중할 수 있다면 세상은 더 좋아질 것이다. 일본도
기꺼이 그렇게 하고 있다. 미국이 현재처럼 일본을 방어하는 것이 너무 부담이 되거나 아시아에서 일본을 지키는 것이 그렇게 가치가 없다고
느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일본은 스스로의 안보를 챙길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단독 플레이어가 될 때, 그건 국제 관계에서 굉장한 변수가 될 것이다. (카드 더미에서 조커가 한 장 추가 된다.)
FZ: 당신은 최근에 일본이 그들의 군대를 해외에 파병할 수 있는
것은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을 주는 행위라고 말 한 바 있다.
LKY:
일본은 무엇을 시작하면 n차까지 하는 문화적 특징이 있다. 나는 일본인들도 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일본인 친구들이
나에게 이 얘길 해줬다. 그들은 이것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FZ: 일본이 여느 강대국이 그랬던 경로대로, 단순히 경제대국에만 머물지 않는데 만족하지 않고 그 다음을 추구하면 어떻게 되는가? 만일 그들이 강대국의 상징인 핵무기를 갖기를 원한다면? 세계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LKY: 만일 일본이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세계는 일본을 저지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는 북한을 저지하지 못하고 있다. 모가디슈 거리에서
피습당해 납치된 미국인이 TV 뉴스 몇 꼭지를 타면서, 미국 정부는 소말리아에서 임무를 계속 수행할 수 없었다. 이런 미국 정부가 마치 이라크를 공격하는 이스라엘처럼,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공격을 고려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미국이 겨우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거부권이 통용될 수 없는 UN을 통한 제재뿐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이 핵을 보유하기로 결정한다고 하면, 나는 미국이 그들을 막을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반면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핵무기를 손에 넣었을 때, 그들에 대한
선제타격을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줘야 했다. 그들이 선제 타격을 피할 수 만 있다면 힘의 균형은
달성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상호 억제 능력이다.
FZ: 이것이 당신이 우려하는 전환기인가?
LKY: 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 그리고 세계가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일본의 재무장 여부는 전적으로
미국의 힘과 의지에 달렸다.
FZ: 정치인으로서의 당신의 역할과 지식인으로서의 당신의 역할간의
모순이 있지 않나? 정치인으로서 당신은 미국이 전세계에서 경외와 존경을 받는 강력한 균형자가 되기를
원한다. 반면 지식인으로 당신은 바로 그런 미국의 모델이 외국에서의 미국의 신뢰를 약화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LKY: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는
미국의 신뢰성이 약화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미국은 세계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일극 초강대국이다.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고 상대를 파멸적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과거의
제국들은 그 패권을 할 수 있는 한 오래 유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악의 제국인 소련을 물리치기
위해, 과거 미국에게 패배했던 적인 유럽과 일본에게 아낌없이 기술을 무료로 이전하여 기술의 혁신을 일으키게
했고, 30년 이내에 그들이 미국의 도전자가 될 수 있게 했다. 1975년에 그 나라들은 미국의 발끝도 따라오지 못했다. 이는 역사에서
유래 없는 일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와 미국의 이상주의가 합쳐진 어떤 위대함이 미국에겐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미국의 모든 것을 존경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솔직히 우리가 우리의 지침이 되었던 서구의 장점들을 찾지 못했다면, 우리는
후진국을 낙후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낙후된 경제와 후진 사회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구의 모든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
우리의 대화를 관통하는 주요 주제는 문화였다. 리콴유는 계속해서 서구의
가치와 유교주의의 차이와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관점을 되풀이 했다. 이런 점에서 리콴유는 문화의
일부였다. 비즈니스 컨설턴트에서 군사 전략가까지 사람들은 문화를 인생의 가장 근원적이고 결정적인 부분이라고
말한다.
나는 여전이 회의적이다. 문화가 운명이라면, 어떤 시대에 성공한 문화가 다른 시대에 실패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오늘날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을 유교주의가 설명할 수 있다면, 지난 400년간 동아시아의 정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막스 베버를
위시한 많은 학자들은 동아시아의 유교중심의 문화가 그들이 자본주의로 발전하는 것을 저해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학자들은 유교주의가 어떻게 경제적 역동성의 핵심이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남미의 나라들이 향후 수 십년
간 성공한다면, 우리는 라틴 문화에 찬사를 보내야 하는가? 나는
한 사회가 특정 시기에 성공한 이유를 하나의 이유로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성공적인 사회가 성공의
씨앗이 되는 문화가 있었다는 연구에 회의적이다. 문화는 복잡하기 때문에,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아무거나 문화에서 찾아낼 수 있다.
문화에 매혹된 리콴유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문화는 그가
타고난 무엇인가가 아니다. 30대가 되기 전까지 리콴유는 “해리(Harry)”라고 불렸다. (그의 친구들과 가족들은 여전히 그를 그렇게
부른다.) 1960년대에 한 영국 관리는 그에게 “해리, 당신은 동양 최고의 영국인이야.”라고 말했다. 리콴유는 서양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문화적 차이에
대한 그의 관심은 확실히 그가 서구 민주주의적 제국주의에서 발견한 것들에 대한 일관적인 방어논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가 우리의 대화에서 말했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것이었다. “우리는 과거를 지나왔고, 옛 것의 일부라도 우리에게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불안감이 기저에 깔려 있다.”
문화는 변한다. 경제의 발전, 기술의
변화, 사회의 변모의 영향으로, 어떤 문화도 동일하게 남아있을
수 없다. 리콴유가 동양문화로 꼽았던 대부분의 것들은 한 때 서양문화였던 것이다. 400년간의 경제발전이 그것을 바꿨을 뿐이다. 영국의 경제발전 초기에, 많은 영국인들은 영국이 부자가 되면서 영국 고유의 도덕과 윤리적 기반이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다. “부가 축적되면, 인간은 부패한다.”라고
올리버 골드스미스가 1770년 썼다. 이 부패가 바로 리콴유가
피하기 위해 애썼던 바로 그것이다. 그는 오늘날 동아시아에서의 종교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이야기했지만, 그는 서구에 대한 대안으로써 유교주의에 대한 그의 열정적 연구는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구화 없이 현대화를 하는 것은 어렵다. 이 둘은 구분되기 어렵다. 서구는
서구와 “그 이외”라는 표시를 남겼다. 이건 단순히 기술이나 물질문명의 유산이 아니다. 이것은 훨씬 심오한
사고의 영역이다. 리콴유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나에게 3장의 서류를 건냈다. 그것은 그가 쓴 유교주의 문화가 서구와 어떻게
구별되는지 강조하고 설명한 글이었다. 그 글은 ‘동아시아: 전통과 변화”이라는 책의 일부였다.
끝.
원문:
https://paulbacon.files.wordpress.com/2010/04/zakaria_lee.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