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3일 토요일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 / 임명묵

자유민주정의 시작

영국에서 이성권리라는 통치원리를 시작. 13세기 대헌장, 17세기 명예혁명을 통해 귀족과 젠트리라는 근대 사회의 엘리트들의 권리를 규정. 권리장전은 18세기말 미국헌법, 프랑스에서 왕정이 붕괴되며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으로 확장. 19세기 자유주의는 서구 민주주의 확립.

자유민주정은 역동적인 힘으로 스스로 정당성을 확보함. 전쟁에서 자유민주정이 막강한 힘 발휘. 미국의 자유민들은 아메리카 원주만의 땅을 자유롭게 탈취하여 하나의 경제단위로 조직. 프랑스 시민들은 그 전에는 동원할 수 없는 엄청난 숫자의 국민군을 구성하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임. 자유민주정의 압도적인 힘을 경험하자 기타 유럽국가도 빠르게 모방. 19세기 독일과 일본도 입헌군주국. 20세기 어떤 제국의 황제도 입헌 국민국가를 이길 수 없게 됨.

 

20세기 자유민주정의 위기

양차대전 전체주의와 냉전 사회주의의 도전을 받았지만, 20세기 자유민주정이 모두 승리. 베를린 장벽 붕괴는 19세기 전통주의와 20세기 전반 전체주의의 싸움에서 계몽주의가 승전했다는 사건. 1989년 급기야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선언하게 됨.

하지만 후쿠야마의 승리선언 30년만에 다시 자유민주정의 위기가 찾아옴. 자유민주정이 질 것 같지는 않지만 다시한번 다른 이념들과의 경쟁, 투쟁에 나서는 역사의 시기가 도래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이유

헌팅턴 <3의 물결>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사들이 소련을 격퇴를 보며, 앞으로 냉전의 지정학이 아니라 문명의 충돌이 세계사의 동력임을 간파함. 가장 위험한 지정학적 단층선으로 우크라이나의 드네프르강을 꼽음. 푸틴은 2004, 20062014, 그리고 2022년 이 단층선 활성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단순한 푸틴의 권력욕으로 설명할 수 없음. 푸틴이 개인 계좌와 지중해 별장에서 호화생활을 원한다면 전쟁은 일으켜서는 안 됐음. 그건 러시아 엘리트(올리가르히)에게도 마찬가지임. 세속적 목적으로만 보면 서유럽 생활을 즐기는 그들에게는 일으켜서는 안 될 전쟁임. 푸틴의 독재정 그리고 러시아인들이 합의하고 있는 세계관에 따라 전쟁을 감수하게 된 것

 

푸티니즘

푸틴 정권을 정당화 하는 정치이론, 정서, 서사의 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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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시아는 오랜기간 동방과 서방사이의 정체성 혼란.

러시아는 문명화된 서구 국가로서 인정을 받고자 부단히 노력한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

 

아시아 식민지를 정복하고 문명의 빛을 전달한다고 선전. 표트르 대제는 서구식 건물에 입주. 동시에 여전히 불안감. 페테르부르크는 인공물. 서구화의 씨앗을 뿌린 차르 전제정이 서구화의 불안감을 느낀 당사자.

서구주의-슬라브주의 논쟁.

도스토옙스키 등 러시아의 낙후성이나 야만성을 오히려 영성과 도덕등의 가치로 재해석. 알렉산드르 3세 시기 정부의 지지를 받으며 크게 유행

러시아는 크림전쟁의 패배. 1978년 베를린 조약에서 오스만 제국에 압도적인 승리에도 유럽 각국의 견제로 외교적인 패배

러시아의 식민정책은 인접 식민주의. 정복지를 본토와 결절된 공간이 아니라 본토의 연장선상으로 이해.

1917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전제정 붕괴. 임시정부는 브루주아 출신 온건 좌파. 독일과의 전쟁 후 영불 자유주의 계몽주의 수용 청사진. 그러나 인민은 인내심 바닥. 토지개혁과 1차 대전 종결 요구. 볼셰비키 페트로그라드 사회주의 대혁명 성공.

표트르 대제~볼셰비키 엘리트 컨센서스

러시아는 후진적인 동방이며, 그렇기에 앞서 있는 서구를 추격해야하고 그것은 강력한 국가의 힘에 의해 실현될 수 있다.”

볼셰비키는 한걸은 더 나가 계획경제을 가장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인식. 자본주의 초월의 꿈 ㅋㅋ

볼셰비키는 인민 복지국가의 이상향을 짧은 기간에 달성 목표. 신세계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어떤 희생도 감내 가능. 정치지도자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필수적. 인적 관계망을 통한 지배. 영토 전역에서 자원 동원해 재분배하는 시스템, 군사적 정복과 팽창을 추구, 언론, 출판, 결사,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음

이시오프 스탈린은 서구의 시각도 연연하지 않음. 16세기 이반 뇌제가 롤모델. 안정적 통치를 위해서 1920년대 혁명기의 급진적 계몽주의 상당부분 온건화.

2)    1917~1991년까지 겪은 고통스러운 제국 해체의 기억(트라우마)

후루쇼프;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가 집권. 우크라이나 농민출신. 195620차 공산당 대회에서 스탈린 과오 인정. 흐루쇼프는 사회를 자유화디고 계획경제의 결정권을 지방으로 더 이관하며 정의로운 공산주의 실현. 3세계의 민족 해방 혁명을 지원하면서 사회주의를 통한 세계발전과 제국주의 세력의 패퇴를 낙관함.

흐루쇼프의 이상주의는 재난으로 끝. 흐루쇼프의 연설은 헝가리에서 반소련 봉기. 마오쩌둥은 소련 외 공산권 지도자의 권위를 흔들어 놓는다고 맹비난. 마오는 흐루쇼프의 소련은 세계적 계급투쟁에서 일탈한 수정주의라고 공개비판

흐루쇼프는 공산권에서 소련의 권위가 흔들리자 쿠바에 핵미사일 배치하는 무리수. 그러나 전세계를 핵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으며 당내 반란으로 축출됨

 

브레즈네프: 1937년 스탈린 대숙청으로 빨리 출세. 스탈린이 독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30년만에 거대한 제국. 유럽의 절반이 붉은 군대 통치. 흐루쇼프의 해빙 수습하고 국가 다시 정상화. 사상의 자유에 대한 제약도 다시 강화. 20세기 러시아의 가장 평화로운 시기. 겉으로는 매우 멀쩡해 보임. 500만의 상비군이 지구 육지의 1/6 지키고 원양함대는 러시아를 드디어 해상강국으로 만들어줌.

1982년 브레즈네프의 노력이 소련의 병을 악화시켰다는 증상 발현. 1970년대 계획경제가 이전과 같은 성과를 낼 수는 없었음. 농촌의 값싼 노동력은 이미 이촌향도 완료. 도시의 신세대는 저출산. 당 관료 통제하는 경제기구는 물자 공급 원활히 못함. 도시민의 소비재 눈이 높아짐. 소련인들은 더 많은 식품과 육류를 원하게 됨.

제국 유지 비용도 증가. 미국의 우방국들은 역동적인 경제를 운영했고 무역을 통해 미국경제에 기여하는 선순환. 소련은 우방국들에 퍼주가만 함. 군사고문단, 기술고문단 등 엄청난 주재원의 체제비도 부담. 197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비용도 부담.

1970년대 아랍의 OPEC이 석유가격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유가폭등으로 산유국 소련은 연명 가능. 1973년부터 1982년까지 10년동안 소련은 석유라는 아편에 취해 경제개혁은 커녕, 문제점도 파악하지 못함. 그사이 서방은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와 사회계약 실험 활발.

 

고르바초프: 러시아 혁명 이후 태어난 최초의 소련 지도자. 스탈린 때부터 혁명의 상처를 보면서 자란 세대. 볼셰비키 혁명 전의 러시아가 얼마나 개판이었는지는 책으로만 배움. 1985년 고르바초프 서기장 취임과 동시에 페레스트로이카추진. 고르바초프의 신레닌주의와 서구주의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페레스트로이카는 소련 제국의 파멸.

1985년 소련이 당면한 가장 큰문제는 자국의 경제적 활력이 꺼지고 있었던 것. 1985-1986년 고르바초프의 가속화 정책. 소련의 자랑인 과학 기술과 중공업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여 생산량을 증대하는 계획. 그러나 소련에게 필요했던 것은 추가 자원 투입이 아니라, 효율적 자원 활용과 경제 주체들이 시장 원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제도적 설계.

 

아프간 철군도 제3세계를 사회주의적 발전으로 인도하기 위한 소련의 신뢰에 치명타.

가속화의 실패, 유가하락으로 인한 재정 손실, 금주법 충격, 아프간 수렁.. 여기에 인류 사상 최악의 인재. 체르노비 원전 사고까지 터짐

고르바초프는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 자신이 선의를 적극적으로 보여주면 미국과 서유럽국가가 화답할 것이라고 생각. 서방으로부터 긴급 경제 지원을 받아 소련 경제의 급한 불을 끄려고 했음. 부시는 자국 의회에서 소련 원조안이 통과되지 않는다고만 할 뿐. 미국도 불투명한 소련에 경제 다른 동유럽 국가들처럼 경제원조를 하기는 쉽지 않았음. 그 돈이 다 어디로 갈줄알고 ㅋ

 

3)    21세기 러시아의 자유민주정 실패의 쓰라린 경험

 

보리스 옐친; 소련으로부터 러시아를 탈출시키는 역할. 대중이 좋아하는 화끈한 퍼포먼스로 인기. 소련은 평화로운 제국 해체.

36세 경제학자 예고르 가이다르와 함께 자유시장경제를 향한 대도약. 폴란드의 시장경제 전환을 도운 미국의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가 러시아에 조언. 19921월 전면적인 가격자유화. 점진적인 자유화는 보수파들의 역풍을 맞을 시간을 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 그러나 전격적인 가격자유화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야기. 모스크바가 가격 조절장치를 일시에 제거하자 소련 경제를 지탱하던 거대 기업들이 일거에 붕괴. 레닌주의 본국에서는 시장경제에 필요한 기초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없었음. 원시적 물물 교환 양상. 시장경제를 모르는 노인들을 상대로한 악성 피라미드 사기 등

인플레이션 폭발, 기업들의 조업 중단, 에너지 수출의 난조

가이다르 실각. 1992년 추바이스 등장. 체코의 민영화 방식인 바우처 민영화 추진. 전국민이 똑같은 액수의 바우처를 지급받고 이 바우처를 바탕으로 경매입찰을 통해 국영 기업의 주식을 확보하는 방식.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다수의 러시아 국민들은 당장 필요한 생필품을 사기 위해 바우처를 헐값에 팜. 꾼들이 바우처 쓸어감. 이렇게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피와 땀으로 건설한 소련의 산업기반이 올리가르히에게 손쉽게 넘어감.

1990년대 민영화와 강도 재벌 탄생, 절대적 물자 부족의 시대. 여성들은 성을 팔고, 물자가 부족해지자 명예와 도덕이 사라지고 범죄와 부패가 기생. 마약과 HIV 창궐.

소련 체제가 키워냈던 인적자원도 붕괴. 학자와 예술가는 자판 깔고, 과학 기술 엘리트들은 서방으로 탈출.

 

1996년 대선. 올리가르히의 과제는 폭망한 러시아 경제 상황속에서 어떻게 옐친을 재선시킬 것인가? 다행인 것은 옐친의 경쟁자는 러시아 공산당. 무지성으로 과거로 돌아가자는 비전만 있음.  유권자들은 지금의 무정부상태보다 소련의 답답함이 더 싫음. 올리가르히는 서방의 광고를 모방해 돈 뿌려서 옐친 재선 선거 광고 엄청 때림. 옐친 재선 성공함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움.

유고슬라비아 내전 발발. 미국이 세르비아에 대한 무력 투사. 러시아 입장에서는 슬라브 형제국의 수도를 자신들과 상의 없이 폭격했다는 사실에 상상이상의 모욕감.

러시아인들 생각: 냉전 이후 10년동안 우리 것을 내어주기만 했음. 하지만 서방은 아무런 지원도 없었고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빼았음

 

러시아는 영웅을 기다린다.

1999년 제2차 체첸전쟁은 푸틴이라는 인물을 발견. 옐친과 젊고 강인한 푸틴이 대비. 옐친과 올리가르히는 푸틴을 얼굴마담으로 세움.

푸틴은 집권하자마자 옐친 뒤통수 치고 올리가르히를 제거하기 시작함. 대중 열광.

 

2000년대 중반 동유럽에서 색깔혁명 터짐. 조지아,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 3국도 폴란드, 체코, 발트 3국과 같이 서방식 정치, 경제를 수용하고 서방의 일원으로 합류하기 원함. 서구 국가들과 NGO가 색깔 혁명을 지원.

푸틴과 러시아는 색깔혁명이 서방국가의 위선의 극치로 인식. 미국은 러시아를 온전한 주권 국가로 대우한적도 없으면서

색깔 혁명은 러시아와 푸틴에게 3가지 위협.

1. 해당국가들이 지정학적으로 서방에 포섭 2. 러시아인들에게 탄압받았던 소수 민족의 각성 3. 결국 러시아까지 전복되지 않을까?

 

푸틴 2. 푸틴은 강력한 중앙 집권을 복원하고 서방으로 승인을 받는다면 러시아도 대유럽 경제권에 합류하여 큰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확신. 아마 서방도 경제적으로는 푸틴의 중앙집권을 인정할 용의도 있었음 그러나 문제는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 있는 국가들에 대한 서방과 러시아의 생각은 합의점을 찾을 수 없는 수준.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적 대침체는 에너지 가격 하락으로 이어짐. 에너지 의존경제가 갑작스러운 유가 하락으로 쇠퇴. 러시아는 근외 지역에 대한 통제력보다 국내 경제와 사회 문제에 집중. 지난 8년간 두터워진 중산층의 정치적 불만 누적. 푸틴 2기 권위주의에 피로감 극심해짐

 

러시아 중산층은 지중해 휴가, 런던 유학, 독일에서 일자리 잡는 생활에 만족. 고르바초프의 꿈 실현.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러시아도 서구국가가 됐으면 하는 바람. 그래서 2008-2012년 메드베데프 대통령에 실망. 대규모 부정선거로 푸틴 3기 등장.

 

종교의 부활과 자유민주정에 여러 도전들

1979년 이란 혁명은 종교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

1980년대는 새로운 형태로 부활한 종교 전통이 정치화되어 계몽주의 정부를 압박.

1980년을 기점으로

남한에선 북한을 사라진 민족적 가치가 구현된 곳으로 이상화하는 주체사상 확산.

동유럽에선 공산당의 통제력이 약화되며 가톨릭, 정교회, 이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부활.

미국에서도 경제적 자유주의와 기독교에 근거한 문화적 보수주의를 조합한 레이건 혁명

 

미국, 소련은 공히 자신들의 근대화 결과 무지몽매한 종교가 퇴출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몽주의의 정점에서 종교의 부활을 목도하고 화들짝 놀람.

. 미국의 자유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는 인간의 계몽을 통해 인간의 이성으로 작동하는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공통점. 인간을 우주로 보내겠다는 경쟁이 그 단면. 계몽의 수단인 산업화와 도시화가 종교의 부활의 촉매가 된 아이러니.

 

서방 국가들의 도덕적, 지적 패권은 비서방 세계의 시민들에게 영향. 헌법과 다수결로 정당화되지 않은 권력은 모두 존립 근거가 없는 부당한 권력.

21세기 권위주의 국가 지도자들에게 가장 필요해진 건 물질적 부가 아님. 한국과 대만의 사례를 보면 물질적 부가 늘어나더라도 (어쩌면 오히려 물질적 부가 늘어났기 때문에) 권위주의 정권의 통치 정당성이 흔들림. 한국과 대만의 민주화.

하지만 중국은 소득과 소비의 문제를 넘어서 억압적 통치마저 정당화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통치 논리 개발. 중화민족의 발전을 선도하고 중앙 통제력 상실로 인한 혼란을 방지.

1980년대부터 러시아에서는 점차 극우 사상에서 새로운 사상적 활력을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 증가. 자신만의 공간에서 각자의 문명적 전통에 따라서 활동.

푸틴이 세계관 전쟁을 진짜 전쟁으로 확대하라고 러시아 군에 명령했을 때 탈냉전의 승리주의와 미국의 보편주의는 끝남. 역사의 귀환.

  



우리는 국가자본주의로 가고 있다.

2024.12.13. Russell Napier 인터뷰 발췌 . 지금 봐도 놀랍네.. 번역은 번역기 시킴 ㅋ  Key takeaways  -------------------------------------- 역사적으로 30~40 년마다 통화시스템...